한국 증시가 다시 흔들리고 있습니다. 올 하반기 초입만 하더라도 ‘오천피’ 기대감이 시장을 달궜지만, 최근 분위기는 정반대입니다. 정부가 구두개입에 나서고 있음에도 원·달러 환율이 1480원 목전까지 치솟으며 원화 가치가 연일 추락하자 외국인 투자가가 대량으로 물량을 던지며 국내 증시를 끌어내리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 버블 우려와 미국 경제 침체 불안도 커지며 코스피 지수는 끝내 3900 밑으로 추락한 상황입니다. 상황을 반전시킬 것이란 믿었던 엔비디아 실적 발표도 기대만큼 시장 분위기를 변화시키진 못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개인 투자자들은 ‘오천피’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하며 빚투(빚내서 주식 투자)와 레버리지(일일 수익률의 배 이상 추종) 베팅에 나서고 있는데요. 이번 선데이 머니카페에서는 지난주 한 주 동안 국내 증시 상황을 되짚어보고 향후 전망에 관해 논의해보겠습니다.
원화 가치 추락에 외국인 자금 ‘썰물’…이달 들어서만 12.7조 순매도
올해 국내 증시 상승장을 이끌었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완전히 돌아섰습니다. 외국인은 지난주 단 한 주 동안 3조3910억 원어치의 국내 주식을 순매도했습니다. 이달 들어 15거래일 동안 누적 순매도 규모는 무려 12조6970억 원에 달합니다. 연초 강하게 들어왔던 외국인 자금이 빠르게 빠져나가며 국내 증시 조정 압력이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외국인의 매도세는 국내 시가총액 1·2위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집중됐습니다. 외국인은 이달 들어 삼성전자를 2조1150억 원, SK하이닉스를 7조8370억 원 순매도했습니다.
외국인이 매도세로 돌아선 가장 큰 이유는 환율 불안입니다.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지난주 마지막 거래일(21일) 원·달러 환율은 1475.6원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장중 한때 1476원까지 오르며 올해 기록한 최고치(1475.4원)를 넘어섰습니다. 정부가 환율 방어를 위해 구두개입에 나섰지만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최근 원화 가치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수준까지 떨어지고 있는데요. 한국은행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실질실효환율(REER) 지수는 89.09(2020년 기준 100)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2009년 8월(88.88) 이후 16년 2개월 만에 최저치입니다. 실질실효환율은 한 나라의 화폐가 상대국 화폐보다 실질적으로 어느 정도의 구매력을 가졌는지 보여주는 경제 지표 입니다.
다음 달 미국 기준 금리 인하를 두고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매파적 기조를 보인다는 점도 우려를 키웠습니다. 최근 리사 쿡 연준이사는 '금융 안정성(자산 버블)', 마이클 바 연준 이사는 '인플레이션 우려', 클리블랜드 연은 총재는 '경제·금융시장 전반의 위험'을 언급하며 다음 달 금리 인하에 반대하는 발언을 쏟아내며 시장 불안을 키우고 있습니다. 비둘기파로 분류됐던 굴스비 시카고 연은 총재도 '기저 인플레'를 이유로 금리 인하에 회의적인 입장을 밝힌 상황입니다. AI 반도체 대장주인 엔비디아가 지난주 호실적을 발표하며 시장 분위기가 바뀌는 듯 했으나 ‘외상장부’인 올해 매출 채권이 지난해 대비 100% 넘게 늘어났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투심이 빠르게 악화했습니다.
외국인이 물량을 털어내는 동안 개인 투자자와 기관투자가가 매수로 맞섰지만 하락 흐름을 막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지난주 코스피 지수는 한 주 동안 158.31포인트(3.95%) 하락한 3853.26으로 마감하며 3900선 방어에도 실패했습니다. 이달 3일 4221포인트까지 올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던 코스피 지수는 고점 대비 약 9% 빠진 상태입니다.
코스닥 지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코스닥 지수는 지난주 한 주 동안 무려 5% 넘게 추락했습니다. 글로벌 빅파마(초대형 제약회사)들과 국내 대형 바이오 기업들의 대형 수주 계약 체결 발표로 뜨거웠던 투자 열기가 한 주 만에 폭삭 식어버렸습니다.
뒤늦게 시동 걸린 개미는 빚투·레버리지 베팅…예탁금은 줄어
국내 증시가 흔들리는 가운데서도 개인 투자자들은 오히려 베팅 강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26조 8471억 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다시 경신했습니다. 투자자가 보유한 주식을 담보로 자금을 빌리는 예탁증권 담보융자도 24조 3857억 원 수준을 유지하며 레버리지 투자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습니다.
개인들은 최근 조정장을 일시적인 숨 고르기로 판단하는 분위기입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주 개인 투자자는 코스피 지수를 2배로 추종하는 ‘KODEX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를 1546억 원 순매수하며 전체 ETF 중 순매수 2위를 기록했습니다. 반면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KODEX 200선물인버스2X’와 ‘KODEX 인버스’ ETF는 각각 1091억 원, 275억 원어치를 순매도하며 증시 반등에 대한 강한 신뢰를 드러냈습니다.
다만 모든 개인들이 공격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증시 대기 자금 성격의 투자자예탁금은 단 일주일 만에 약 8조 원 감소했습니다. 변동성이 커지면서 일부 투자자들이 추가 자금 투입을 보류하고 관망에 들어간 것으로 분석됩니다.
시장 분위기는 불안과 기대가 공존하는 국면입니다. AI 고평가 논란, 연준의 다음 달 기준 금리 인하 기대 약화, 환율 불안 등 단기 부담 요인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AI 산업 성장 사이클 자체가 꺾인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회복 가능성을 열어두는 시각이 늘고 있습니다.
특히 코스피는 3700~3800포인트 구간에서 하단을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우세합니다. 코스피가 3800포인트 아래로 내려온 구간에서는 선행 PER이 약 10배 수준까지 낮아지며 밸류에이션 매력이 다시 부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장에서는 이번 조정이 과열 해소 성격이 강한 만큼, 다시 반도체·AI 등 주도 업종 중심의 매수 전략이 유효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살아나고 있습니다.
향후 방향성은 유동성 회복 여부가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조아인 삼성증권 연구원은 “최근 변동성 확대는 달러 유동성 축소 영향이 컸다”며 “미국 셧다운 종료로 재정 집행이 재개되고 다음 달 연준의 양적 긴축(QT)이 종료되면 관련 우려가 완화될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시장에서는 환율 부담도 점진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변준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엔비디아의 호실적은 AI 버블 우려를 완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으며, 원·달러 환율도 1470원선에서 저항선 역할을 할 가능성이 커 외국인의 차익 실현 물량도 점차 진정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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