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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 한계, 과학으로 푼다”…삼성전자가 하버드 석학 택한 이유 [갭 월드]

■서종갑 기자의 갭 월드(Gap World)

반도체 미세 공정 한계 ‘기초 과학’ 돌파구

2021년 삼성과 ‘뇌 복사’ 논문서 합류 예견

“기술 또 기술” JY ‘10년 미래’ 완성 적임자

박홍근 삼성전자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 신임 사장




삼성전자(005930)가 기술 전략의 무게중심을 ‘공학적 개선(Engineering)’에서 ‘과학적 혁신(Scientific Innovation)’으로 옮기고 있다. 박홍근 하버드대 석좌교수를 삼성전자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 신임 원장으로 선임한 것은 물리적 한계에 부딪힌 반도체 미세 공정을 근본적인 기초 과학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번 인사는 엔지니어링의 효용이 다한 자리에 딥 테크(Deep Tech)라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이식하겠다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전략적 판단이 깔려있단 분석이다.

딥 테크는 첨단 과학과 공학 기술을 기반으로 장기간 연구개발과 상당한 투자를 통해 해결하기 어려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혁신적인 기술 분야를 뜻한다. 단순한 기술 개선이 아닌 기초 과학 연구에 기반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잠재력을 가진 기술을 지칭한다. 인공지능(AI), 바이오, 양자 컴퓨팅, 첨단 소재, 로봇 공학 등이 대표적이다.

삼성전자는 21일 단행한 사장단 인사에서 박 교수를 SAIT 원장으로 내정했다. 2026년 1월1일부터 근무를 시작한다. SAIT는 삼성의 5년 뒤, 10년 뒤 미래 먹거리를 책임지는 연구개발(R&D) 컨트롤타워다. 박 신임 원장은 2021년부터 이미 SAIT 과학 자문위원(Senior Advisor)으로 활동하며 삼성의 중장기 기술 로드맵 수립에 관여해 왔다.

2021년 ‘뇌 복사’ 논문…딥 테크의 예고편


박 신임 원장의 영입 신호는 2021년에 이미 감지됐다. 당시 그는 김기남 전 삼성전자 부회장, 함돈희 하버드대 교수 등과 함께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 일렉트로닉스(Nature Electronics)’에 논문을 발표했다. 제목은 ‘뇌를 복사해 붙여넣는 뉴로모픽 전자공학(Neuromorphic electronics based on copying and pasting the brain)’이다.

이 논문은 뇌 신경망의 연결 지도를 나노 전극으로 복사해 3차원 메모리 반도체에 붙여넣는 개념을 제시했다. 기존 공학적 접근으로는 구현하기 힘든 뇌의 초저전력 연산 능력을 반도체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박 원장은 자신의 주특기인 나노 과학과 양자 공학 지식을 접목해 이 연구를 주도했다. 삼성전자가 단순한 제조 중심을 넘어 기초 과학에 기반한 플랫폼 기업으로 변화하려 한다는 사실을 4년 전부터 예고한 셈이다.

‘한계 다다른 미세공정’ 공학, 유통기한 만료


이번 인사의 핵심 배경은 공학적 개선의 유효기간 만료와 과학적 혁신의 필요성 대두다. 반도체 회로 선폭을 줄이는 미세 공정 경쟁은 물리적 한계에 직면했다. 기존 실리콘 기반 기술만으로는 더 이상의 획기적인 성능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삼성전자가 순수 과학자 출신인 박 교수를 영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존의 틀을 조금씩 고치는 엔지니어링 방식으로는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구조 자체를 완전히 뒤엎는 시도가 필요한 시기란 평가다. 박 원장은 양자 역학과 나노 바이오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다. 그의 임무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기술에 양자 컴퓨터와 뉴로모픽 같은 ‘기초 과학 DNA’를 심어 기술적 해법을 찾는 것이다.

4년간 검증된 ‘삼성맨’…이재용 회장과 동문


박 원장은 갑자기 등장한 외부 인사가 아니다. 그는 2021년부터 4년 가까이 SAIT 자문역을 수행하며 삼성 내부의 기술적 난제와 조직 문화를 파악했다. 외부 석학 영입 시 발생할 수 있는 조직 간 부조화 리스크를 사전부터 줄여온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삼성이 장기간 공들여 검증한 인사라고 평가한다.

이 회장과의 연결고리도 있다. 두 사람은 하버드대 동문이다. 박 원장이 하버드대 정교수로 재직할 당시 이 회장은 하버드 경영대학원(HBS)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 이 회장이 강조해 온 ‘세상에 없는 기술’을 실현할 적임자로 글로벌 네트워크와 과학적 통찰력을 겸비한 박 원장을 낙점했다는 분석이다.

이 회장은 그간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3월 SAIT 직원들과 간담회에서도 “선행 기술 확보는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짚었다. 박 사장은 업무를 시작하는 내년 1월부터 나노기술·화학·물리·전자 분야 연구를 기반으로 양자컴퓨팅·뉴로모픽 반도체 등 미래 디바이스 개발을 이끌 것으로 예상된다.




※‘갭 월드(Gap World)’는 서종‘갑’ 기자의 시선으로 기술 패권 경쟁 시대, 쏟아지는 뉴스의 틈(Gap)을 파고드는 코너입니다. 최첨단 기술·반도체 이슈의 핵심과 전망, ‘갭 월드’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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