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인협회는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자연인(총수)을 ‘동일인’으로 지정하고 각종 의무를 부과하는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이 법인 이사회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데도 ‘총수=회사’라는 전제 아래 부과하는 과도한 규제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행 제도는 동일인이 일면식도 없는 먼 친척의 재산 관계까지 파악해야 하는 등 불필요한 업무가 발생하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경협은 공정거래 분야에서 개선해야 할 제도와 시행돼야 할 과제 24건을 정리한 건의서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했다고 18일 밝혔다.
건의서는 크게 △기업집단 규제체계 개선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기준 개선 △형벌체계 합리화 △산업-금융시너지 강화 등 4가지를 담았다.
한경협은 1980년대 도입된 후 현재까지 유지된 '동일인 지정제도'가 최근의 기업지배구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자연인을 제외하고 법인 중심으로 동일인을 지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은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회사 또는 자연인(총수)을 ‘동일인’으로 지정하고 각종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대기업집단의 상당수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고 경영 의사결정도 개인이 아닌 법인인 이사회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법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현장에서 나온다.
특히 정보기술(IT) 기반의 새로운 사업형태를 갖고 있는 기업집단이 출현하면서 동일인 지정에 논란이 발생하는 상황이다. 지난 2017년 네이버 글로벌 투자책임자 이해진과 특수관계인의 지분이 4.49%에 불과한데도 공정위는 지배적 영향력이 있다고 보고 동일인으로지정한 바 있다. 이에 따라 한경협은 법인만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도록 개선하고 장기적으로는 동일인 지정제도를 단계적으로 폐지할 것을 제안했다.
또 한경협은 동일인 관련자(특수관계인)의 범위가 과도하게 규제 대상을 늘릴 우려가 있다고도 지적했다. 현행 규정은 4촌 이내 혈족, 3촌 이내 인척까지다. 요건에 따라 6촌 이내 혈족 및 4촌 이내 인척도 포함될 수 있다. 가족 관계의 범위가 축소되면서 촌수가 가까워도 교류가 전혀 없거나 본 적도 없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일인은 이 규제를 준수하기 위해 기타 친족을 확인하고 동일인이 지배하는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는지, 동일인의 관련자와 채무보증 등이 있는지 등을 파악해야 한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에 가까운 기타 친족이 주식 보유와 채무 현황을 알려주지 않으면 강제할 방법은 없다. 한경협은 “동일인에게 특수관계인의 개인적 투자내역 까지 모두 확인하여 보고하도록 하고 이를 어길 경우 형사처벌하는 것은 행정편의주의"라며 "공정위가 밝힌 개정 취지에 맞게 5촌 이상의 혈족과 4촌 이상의 인척은 일률적으로 동일인관련자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경협은 현재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의 기업집단을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한 규제도 현실과 괴리가 있다고 꼬집었다. 해당 자산총액 기준은 2009년 설정된 것으로 이후 경제규모의 확대를 반영하지 못하며 현실적 의미를 잃고 있다는 취지다. 실제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 계열사 중 약 78%가 규모 기준으로 중소기업에 해당하는 등 현행 기준은 경제에 미치는 실질적 영향력이 크지 않은 기업집단까지 과도하게 규제 대상에 넣고 있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은 지난해부터 국내총생산(GDP) 연동 방식으로 지정기준이 매년 조정되고 있다. 반면 공시대상기업집단은 고정 금액을 유지하고 있어 제도 간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다는 게 한경협의 주장이다.
한경협은 공정위가 올해 초 업무 계획에서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기준의 GDP 연동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만큼 절대금액 방식의 현행 기준을 '경제 규모 대비 상대적 기준'으로 조정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공정거래법은 시장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지키는 핵심 법제이지만, 시대 변화에 맞춰 제도 역시 함께 진화해야 한다"며,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기업의 합리적 경영활동까지 제약하는 규제는 결국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공정위가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해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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