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50년 전 오일쇼크 와중에 중동에서 세계 진출의 문을 열었습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자본도, 자원도, 기술도 아닌 ‘할 수 있다고 믿는 자의 용기’입니다. 마루SF에 모인 모든 창업자들이 제 아버지 같은 이야기를 써내려 갔으면 합니다.”
정몽준 아산나눔재단 명예이사장은 12일(현지 시간) 미 캘리포니아 산마테오에서 열린 ‘마루SF’ 개관식에 참석해 “정주영이라는 한 개인의 도전이 지닌 힘이 회사·산업·국가의 미래를 변화시켰다”며 “꿈과 도전정신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스타트업의 실리콘밸리 진출 교두보가 될 마루SF에서 ‘제2의 아산 정주영’이 탄생하기를 기원한 것이다.
마루SF는 정 창업주의 기업가정신 확산을 목표로 삼은 아산나눔재단의 세 번째 스타트업 지원 공간이자 첫 해외 거점이다. 국내에 있는 마루180과 마루360이 스타트업 공유 사무실인 반면 실리콘밸리 마루SF는 한국에서 세계로 나아가려는 스타트업이 ‘임시 거점’으로 삼을 수 있는 업무·주거·네트워킹 공간이다.
마루SF는 외관부터 사무실보다 교외 고급 주택에 가깝다. 총 11개 침실과 주방, 공용 업무 공간이 마련된 내부는 미국 대학 기숙사나 게스트하우스를 연상하게 한다. 실리콘밸리 장·단기 출장에 나선 스타트업이 ‘숙식’을 해결하며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구조다. 이 때문에 프로그램에 선정된 기업도 한 번에 2~6주간, 1년에 총 16주만 사용할 수 있다. 더 많은 기업에 해외 진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취지다. 정 명예이사장은 한국 특파원단과 만나 “동북아시아의 작은 나라인 한국이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해외에 나가 먹거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며 “처음 해외에 자리 잡을 때 많은 고생을 겪는 스타트업의 안착을 도울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아산나눔재단 실무는 정 명예이사장의 장녀인 정남이 상임이사가 이끈다. 정 상임이사는 컨설팅 회사 베인앤컴퍼니에서 일하다 2013년 재단에 합류해 마루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 그는 마루SF 설립 취지에 관해 “스타트업 창립 ‘당일’부터 세계시장을 노리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초기에는 돈이 없고 한국에서 성공한 뒤에는 서비스와 제품이 ‘한국화’돼 외부에서 통하지 않는 딜레마를 해결해주고 싶었다”며 “가능성 있는 초기 스타트업이 돈이 없더라도 세계를 경험하고 고객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라고 했다.
이날 마루SF 내에는 본격 개관에 앞서 입주한 스타트업 임직원들이 업무에 몰두하고 있었다. 로비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는 모습 옆으로 열띤 토론을 나누는 이들도 보였다. 여느 실리콘밸리 ‘본토’ 창업 공간과 다름없는 모습이다. 정 상임이사는 “처음에는 주간 단위 교류를 정기화하려 했으나 매일 야근하는 입주사들이 자연스레 교분을 나눠 첫날 인사 외에는 필요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곳곳에는 ‘길이 없으면 찾고 없으면 만들면 된다’ ‘가장 귀한 것이 사람이고 자원·기술은 그 다음’ 같은 정 창업주의 어록이 붙어 있었다. 정 상임이사는 “창업가들이 밤샘 업무 중 글귀를 보고 자극받았다는 얘기도 한다”고 미소를 지었다. 실리콘밸리의 한인 창업가 중에는 맨손으로 현대그룹을 일궈낸 정 창업주에게 존경심을 품은 이들이 많다. 기업가치 37억 달러에 달하는 ‘눔’을 창업한 정세주 의장이 대표적이다.
스타트업 반응은 열광적이다. 현재 마루SF를 이용할 수 있는 스타트업은 글로벌 벤처캐피털(VC) 등 창업 생태계와 아산나눔재단이 선정한 53개 기업으로 제한됨에도 선착순 ‘예약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규모 있는 스타트업도 거점 공간 탄생이 반갑다. 원티드랩 공동 창업자인 황리건 플랫폼 총괄이사는 “비용은 언제나 골칫거리인 데다 원티드랩처럼 한국에서 시작한 기업은 미국 진출 시 기본적인 정보와 인맥이 부족하다”며 “창업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는 정보와 네트워크가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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