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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행동주의 펀드, 왜 LG화학을 찍었을까…첨단 IB기법 엿보인다[이충희의 쓰리포인트]

①주주제안 발송 “LG엔솔 지분 활용해 자사주 매입”

②자사주 소각시…LG의 화학·엔솔 지배력 대폭 상승

③누울 자리 보고 뻗었다지만…'먹튀 자본' 나쁜 이미지


연말을 앞두고 국내외 행동주의 펀드들의 공세가 시작됐습니다. 내년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표(의결권)를 결집 시키려면 주주명부가 폐쇄되는 올 연말까지 지분을 더 확보하고 대상 회사를 향해 주주제안을 해야 할 시기가 된 것입니다.

영국 운용사이자 한국 시장에 관심이 많은 팰리서캐피탈도 슬슬 시동을 걸고 있습니다. 팰리서는 지난달 LG화학(051910)을 상대로 한 주주제안을 공개했는데요, 이들의 요구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회사가 가진 자산 규모 대비 주가가 너무 낮네요. 주가 올릴 방안을 몇 가지 제안할테니 이행해주세요.”

팰리서는 국내에서 ‘먹튀’, ‘탐욕 자본’ 같은 별칭이 붙는 등 썩 좋지 않은 이미지가 강합니다. 그럼에도 올해 다시 한국을 찾아 새로운 기업으로 LG(003550)화학을 찍은 건데요. 팰리서는 왜 LG화학을 상대로 행동주의 활동을 시작한 걸까요? 그들은 이 회사에서 어떤 가능성을 엿봤을까요?

사실 팰리서의 주주제안 아래에는 첨단 IB(투자은행) 기법이 숨어 있습니다. 오늘 쓰리포인트에서는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 집중 탐구해보려 합니다.

LG화학 로고. LG화학 제공




①주주제안 발송“LG엔솔 지분 활용해 자사주 매입”

팰리서가 이번에 LG화학에 요청한 제안은 ▲경영 전문성을 갖춘 독립이사 선임 ▲주가 연동 경영진 보상체계 도입 ▲LG에너지솔루션(373220) 지분 활용 자사주 매입 ▲장기적인 주가 저평가 관리 프로그램 시행 등 크게 4가지 입니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은 LG엔솔 지분을 활용해 자사주를 매입하라는 부분입니다. LG화학은 올 6월 말 기준 LG엔솔 지분 81.84%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과반 이상만 보유해도 안정적인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데 이보다 훨씬 높은 지분을 갖고 있는 것이죠. 즉, 이 지분을 조금 팔아서 써도 경영권에는 큰 문제가 없는 셈입니다.

실제 LG화학은 LG엔솔 지분을 조금씩 팔아 대규모 현금 마련에 나서왔습니다. 지난달 30일에도 LG엔솔 지분 약 2.46%를 유동화 해 2조 원에 달하는 자금을 확보했죠. 그런데 팰리서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기로 했습니다.

“LG화학 자사주를 매입해 주주가치를 높이세요. 그런데 다른 돈 굳이 쓸 거 없이 회사가 보유한 최대 자산, LG엔솔 지분을 활용하시면 됩니다.”

②자사주 소각시 LG의 LG화학·엔솔 지배력 대폭 상승

최근 LG엔솔의 시가총액은 약 100조 원, LG화학은 약 25조 원 수준입니다. LG화학이 LG엔솔 지분 10%만 활용해도 무려 자사 전체 시총의 40%에 해당하는 주식을 매입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렇게 매입한 자사주를 만약 소각한다고 가정하면 LG화학의 현 최대주주인 ㈜LG(31.52%)는 LG화학에 대한 지배력을 크게 높일 수 있습니다. 단순 계산으로는 약 58%까지 상승할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LG화학의 LG엔솔에 대한 지분율은 10%포인트 낮아져 약 71%가 될 것입니다.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LG의 LG엔솔에 대한 최종 지배력은 훨씬 높아진다는 부분입니다. 현재 지배구조 하에선 ㈜LG의 LG엔솔 지배력은 약 24%로 계산됩니다.(대략 30% x 80% = 24%) 그러나 LG화학이 LG엔솔 지분을 활용해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진행하면 지배력은 40%대까지 높아집니다.(58% x 70% = 41%)



LG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LG와 ㈜LG의 최대주주인 구광모 회장 입장에서도 팰리서의 이런 제안이 크게 나쁘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는 대목입니다.

LG화학이 실제 이처럼 대규모 자사주를 매입하는 결정을 하게 된다면 방식은 공개매수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개매수가는 현주가 대비 일정 수준의 프리미엄을 얹어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야 기존 LG화학 주주들이 LG화학에 본인 소유 지분을 팔 테니까요.

현주가 대비 높은 공개매수가가 설정되면 증시에서 LG화학 주가는 곧장 공개매수 제시가 근처까지 높아집니다. 그러면 기존 LG화학 주주들은 공개매수에 응하기 보다는 장내에서 주식을 파는 선택을 하게 되죠. 공개매수는 장외거래로 간주돼 양도소득세(22%)를 적용 받기 때문입니다. 대신 단기 차익을 좇는 국내외 헤지펀드들이 장내에서 이 주식을 사들일텐데, 이들은 대규모 레버리지를 일으켜 LG화학 주식을 한꺼번에 매입하고 공개매수에 청약해 돈을 벌게 될 것입니다.

LG화학이 LG에너지솔루션 지분을 활용해 자사주를 매입·소각할 시 지배구조 변화 예상도.


③누울 자리 보고 뻗었지만…'먹튀 자본' 나쁜 이미지

이번 주주제안을 살펴본 국내 한 IB업계 전문가는 “팰리서가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었다”고 총평했습니다. 한국 대기업들의 방어막은 비교적 단단한 편인데, 그래도 틈이 벌어질 만한 기업을 찾아 요구를 했고 실제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관계자는 “㈜LG 입장에선 가장 중요한 자회사들인 LG화학과 LG엔솔에 대해 모두 지배력을 끌어올릴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LG화학의 입장은 조금 다를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글로벌 화학 경기가 매우 침체돼 있어 LG화학도 고난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데요.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구조조정까지 실행하려면 LG화학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현금입니다. LG엔솔 지분을 활용해 자사주를 매입하고, 주가를 끌어올리는 것보다 당장 자금을 마련하고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죠.

LG화학 대산사업장 전경 LG화학 제공.


한국에서 팰리서와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히 좋지 않다는 점도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현재 팰리서 내 주요 펀드매니저들은 과거 삼성물산의 합병에 대해 반대하며 국내에서 탐욕적인 해외 자본으로 평가 받았던 엘리엇매니지먼트 출신들입니다.

팰리서는 지난해 SK스퀘어(402340)를 강하게 압박하며 여러 주주제안을 펼쳤는데요. SK스퀘어의 주가가 급상승하자 최근 거의 모든 지분을 팔고 떠났습니다. 국내 재계에서 팰리서를 향해 ‘먹튀 자본’이라는 평가를 내리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LG그룹이 매우 보수적 기업 문화를 갖고 있다는 점도 팰리서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될 것입니다. 국내 한 운용사 대표는 “LG그룹 경영진들이 탐욕적 자본으로 평가되는 팰리서의 요구를 곧장 받아들이고 실행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본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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