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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어린이병원 40년…최은화 병원장 "소아의료는 가족의 삶 지키는 일이죠"[이사람]

■ 최은화 서울대어린이병원장

亞 최초의 대학 부속 소아전문병원

정규 교육과정·의료돌봄센터 운영 등

치료 넘어 일상·정서회복까지 지원

영아 폐이식 등 연구·진료 역량 높여

아태지역 최고 소아 의료기관 자리매김

표정·몸짓만 보고 환아 상태 살피듯

경청·관찰의 리더십, 의료현장에 접목

앞으로도 아이들에 웃음 찾아주고파

최은화 서울대어린이병원장이 지난달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어린이병원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성형주 기자




“병이 다 나아도 아이가 행복하지 않으면 완치된 것이 아닙니다. 건강하게 성장하고 행복한 일상으로 단절 없이 돌아가야 비로소 치료가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의료 현장에서 항상 어린이 환자를 중심에 두고 대화하고 부모님들과 함께 소통하는 것도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치료와 삶의 회복에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최은화 서울대어린이병원장은 5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소아 치료’에 대한 철학을 이같이 밝혔다. 그가 정의하는 치료는 단순히 병을 고치는 일이 아니다. 아이가 다시 웃고 가족이 함께 일상을 되찾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본다. 최 병원장의 소아 치료에 대한 철학은 올 설립 40주년을 맞은 서울대어린이병원이 지켜온 가치이자 앞으로의 방향이기도 하다.

서울대어린이병원은 1982년 기공식을 시작으로 1985년 10월 문을 열었다. 당시만 해도 ‘소아 전문병원’이라는 개념은 낯설었다. 서울대병원은 미래 세대를 위한 별도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아시아 최초의 대학 부속 소아 전문병원을 탄생시켰다. 서울대어린이병원은 단순 치료가 아닌 진료·연구·교육을 아우르는 체계를 구축하며 40년간 우리나라 소아 의료의 근간이 돼왔다. 설립 초기부터 ‘치료의 완성은 삶의 회복’을 목표로 내걸고 △진료 △교육 △돌봄 등 세 축을 중심으로 새로운 의료 모델을 만들어왔다. 질병 치료에 머무르지 않고 아이의 성장과 발달, 정서 회복까지 지원하는 통합 의료 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소아 환자들이 일상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끝에 어린이 병원학교를 세운 것이 대표적이다. 백혈병 등으로 2~3년 이상 장기 치료를 받아야 하는 초중고생 환아들이 학업을 이어가며 치료 후 학교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최 병원장은 “치료가 곧 삶의 단절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며 “아이들이 병원에서도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병원학교는 교육청과 협력해 정규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교사들이 병동으로 직접 찾아가 수업을 진행해 환아들이 학교 복귀 후에도 학업 공백을 최소화하도록 돕는다. 이곳에서 공부한 어린이들은 다시 교실로 돌아가 또래와 어울릴 때 별 어려움 없이 정서적으로 회복된다. ‘건강장애 학생의 학습권 보장’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이 함께 회복할 수 있도록 만든 단기 의료 돌봄센터 ‘도토리하우스’에도 서울대어린이병원의 철학이 담겨 있다. 의료적 지원이 필요한 소아청소년 환아가 단기간 머물며 치료를 이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가족이 잠시 일상으로 돌아가 휴식과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아이들은 병원에서 받던 투약과 식사 일정을 그대로 유지하며 24시간 상주하는 전문의·간호사·사회복지사·간호보조원 등 전문인력의 세심한 돌봄을 받는다. 최 병원장은 “아이가 치료를 잘 받으려면 가족이 먼저 지치지 않아야 한다”며 “간병과 치료에 온 힘을 쏟는 부모가 잠시 숨 고를 시간을 갖는 것, 그리고 아픈 아이 외의 다른 자녀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결국 치료의 연속성을 지켜준다”고 말했다.

서울대어린이병원은 2000년대 들어 전문센터와 연구 기능을 강화했다. 2008년 소아청소년 뇌신경센터, 2011년 희귀질환센터, 2012년 소아임상시험지원실, 2013년 소아응급센터 등을 잇따라 오픈했다. 2017년에는 국내 최초로 영아 폐 이식에 성공했고 2020년에는 소아전문 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됐으며 2021년에는 국내 병원 중 처음으로 소아 백혈병 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CAR-T) 치료제를 생산했다.





전문성과 연구 역량을 꾸준히 확장해온 결과 서울대어린이병원은 올해 미국 뉴스위크가 선정한 ‘아시아태평양 최고 소아 전문병원’ 1위에 올랐다. 한국을 넘어 아태 지역을 대표하는 소아 의료기관으로서의 위상을 다시 한번 입증한 셈이다. 현재 330개 병상과 10개의 수술실을 운영하며 연간 외래환자 33만 명, 입원환자 약 9만 6000명을 진료하고 있다. 규모뿐만 아니라 희귀질환·심장·암 등 중증 소아질환 분야에서 쌓은 임상 성과와 연구 역량이 국제 무대에서도 전문성과 높은 신뢰를 인정받고 있다. 최 병원장은 “어린이병원은 단순한 치료기관이 아니라 소아 전문 의료인을 교육하고 연구를 통해 발전시키는 곳”이라며 “서울대어린이병원이 지난 40년간 축적한 임상 경험과 연구 역량이 국내 소아 의료 수준을 높이고 후속 세대 의료진 양성으로 이어졌다”고 강조했다. 교육·연구·진료가 유기적으로 맞물린 병원의 정체성이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서울대어린이병원의 전문성과 철학은 이제 국경을 넘어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 중증 소아 의료의 거점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코로나19와 의정 갈등이 발생하기 전인 2018~2019년에는 연평균 약 2700명의 외국인 환자가 병원을 찾았다. 아시아 18개국 421명의 의료진을 대상으로 연수와 현장 교육을 운영해 각국의 소아 의료 역량 강화에 기여했다. 특히 보스턴·토론토·도쿄 등 해외의 주요 어린이병원과 공동 연구·교육 교류를 통해 아태 지역의 의료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최 병원장은 “세계에서 인정받는 성과를 만들어낸 힘은 거창한 시스템이 아니라 한 환자와의 신뢰를 쌓는 일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실제 최 병원장은 진료 현장에서도 ‘관계의 힘’을 항상 강조한다. 그는 “많은 의사들이 지식은 비슷하지만 그걸 환자에게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오해가 발생하거나 치료의 과정이 달라지기 때문에 설명과 관계 형성에 많은 시간을 사용하는 편”이라며 “신생아든 청소년이든, 항상 아이를 대화의 중심에 두고 보호자와 함께 설명하려 한다”고 말했다. 환자와 보호자가 치료 과정을 이해하고 수용할 때 비로소 치료가 완성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최 병원장의 가치관은 병원 운영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가 꼽는 리더십의 핵심은 ‘경청과 관찰’. 의사·간호사뿐 아니라 행정직·환경미화원·안전요원 등 병원 구성원 모두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최 병원장의 가장 중요한 업무다. “판단은 나중에 하고, 일단 듣는 게 먼저”라는 그의 말은 환아를 살피듯 구성원을 살피는 것이 병원장의 역할이라는 신념과 맞닿아 있다. 병원 운영에 접목된 ‘관찰의 힘’은 평생을 소아과 의사로 일하며 몸에 익힌 ‘습관’이다. 그는 “어린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스스로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고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표정과 몸짓 하나로 상태를 읽어야 한다”며 “자세히 살피는 습관이 지금은 사람을 이해하고 관계를 조율하는 리더십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전했다.

소아과는 여전히 의사들이 기피하는 진료과 중 하나다. 서울대어린이병원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수년째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 중이며 의정 갈등 이후 전공의들이 대거 현장을 떠나면서 진료 공백은 더욱 커졌다. 소아 진료는 성인보다 두 배의 인력과 시간이 든다. 여기에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인 부담이 겹치면서 젊은 의사들이 소아과를 기피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 하반기 기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모집 결과 총 정원 770명 중 103명만 선발되면서 선발률은 13.4%에 그쳤다. 2015년 상반기 113.2%로 정원을 초과했으나 10년 만에 지원자가 급감했다.

하지만 최 병원장은 여전히 “소아과를 선택하길 잘했다”고 말한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해결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찾는 게 제 방식입니다. 지금 다시 과거로 돌아가 전공을 선택하더라도 소아과를 택할 것 같아요. 처음 의사가 됐을 때는 젊은 여자 의사라는 이유로 환자들에게 신뢰를 얻기 어려운 순간도 있었지만 아이들을 진료하면서는 그런 벽이 없었죠. 제가 갖고 있는 역량을 온전히 펼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대어린이병원은 앞으로도 ‘아이 중심 의료’라는 뿌리를 지키며 진화할 계획이다. 최 병원장은 “소아 의료는 단순히 병을 고치는 일이 아니라 아이와 가족의 삶을 지켜주는 일”이라며 “다음 40년도 아이들이 웃을 수 있는 병원으로 나아가겠다”고 힘줘 말했다.

◇She is…

△1965년 목포 △서울대 의학과(학·석·박사) △1999년 미국국립보건원 박사후연구원 △2003년 분당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임상교수 △2010년 서울대병원 겸직교수 △2013년 하버드 의과대 보스턴 어린이병원 연구교수 △2014년 서울대병원 감염관리센터장 △2017년 보건의료기술정책심의위원 △2021년 아시아소아감염학회 회장, 질병관리청 예방접종전문위원회 위원장 △2023년 서울대병원 소아진료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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