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 수 개월에 거친 협상 끝에 관세 협상을 타결한 다음날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대통령실 발표와 엇갈린 발언을 내놔 혼란을 빚었다. 투자 거버넌스와 방식의 세부 내용도 여전히 추가 협의해야 할 영역이 남아있어 협상 결과가 문서화 되기 전까지는 불확실성이 남아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러트닉 장관은 30일 자신의 엑스(X·구 트위터) 계정에 “한국이 미국에 시장을 100% 개방했다”는 내용의 글을 게시했다. 그러면서 러트닉 장관은 반도체 품목관세에 대해 “이번 협상의 일부가 아니다”라는가 하면 “모든 투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시 하에 추진될 것”이라는 내용도 함께 적었다. 반도체 관세는 대만보다 불리하지 않은 수준으로 하고 투자 프로젝트는 한미 장관이 각각 위원장을 맡는 협의위원회와 투자위원회를 꾸려 선정할 것이라는 한국 측 설명과 배치되는 주장이다.
Q. 농산물까지 완전 개방?
정부는 러트닉 장관의 ‘시장 100% 개방’이라는 표현은 미국 내 여론을 향한 수사적 표현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후 양국 공산품·서비스 시장은 이미 높은 수준으로 개방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대미 수입품에 적용된 실효관세율은 0.79% 수준에 불과하다.
일각에서는 러트닉 장관의 발언이 소고기·쌀·사과와 같은 농산물 수입 확대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고 우려한다. 이에 대해 정부는 “민감 농축산물의 추가 시장 개방은 없다”며 “검역 절차 개선 수준으로만 합의했다”는 입장이다. 실제 7월 30일 양국이 큰 틀에서 합의한 뒤 진행된 세부 협상에서는 농림축산식품부가 거의 개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Q. 반도체 관세는 몇 %?
정부는 반도체 관세에 관해서는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설명한 “대만에 비해 불리하지 않게 적용하기로 했다”는 것이 팩트라고 강조했다. 미국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의 실질적인 경쟁 상대는 대만뿐이어서 사실상 최혜국 대우를 약속받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정부의 관계자는 “러트닉 장관이 이번 협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표현한 것은 구체적인 세율을 정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덧붙였다.
다만 대만 협상 결과에 국내 기업의 관세 부담이 연동돼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는 점은 한계다. 앞서 EU는 반도체에 품목관세 상한선 15%를 약속받았다. 이와 함께 일부 일부 전략 반도체 장비에 대해서는 무관세 조치도 얻어냈다. 일본도 반도체 품목에 최혜국 대우를 적용하는데 성공해 EU에 세율이 연동된다. 한국 역시 최혜국 대우를 요구해도 됐을텐데 굳이 대만을 콕 집어 연계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Q. 협의위원회의 구체적 권한은?
한미 관세 협상과 미일 관세 협상의 주요한 차이점 중 하나가 ‘협의위원회’다. 일본은 미국 상무장관이 주재하는 ‘투자위원회’가 프로젝트를 추천하면 미국 대통령이 낙점하는 방식에 합의했다. 반면 정부는 한국 산업통상부 장관이 주도하는 기관을 추가해 투자 거버넌스의 균형을 맞췄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협의위원회 권한이 아직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김 실장은 전날 “두 위원회가 상호 협의해 프로젝트를 고른다”며 “협의위가 전략적·법적 고려사항을 제시하면 투자위는 프로젝트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소개했다. 미국이 무리하게 투자를 요구해도 실질적으로 제동을 걸 수 있는 권한까지는 없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2000억 달러의 투자를 지시한다(direct)”는 러트닉 장관의 발언은 이같은 점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Q. 알래스카 LNG에도 투자?
러트닉 장관이 △알래스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에너지 인프라 △핵심 광물 △첨단 제조업 분야에 한국이 투자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이론적으로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미는 7월 30일 합의에서는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패키지의 투자 분야를 반도체·배터리·조선업·원전 등 전략 제조 산업에 국한했지만 이번 세부 협상에서는 투자위원회에서 협의하는 방식으로 열어둬서다.
앞서 백악관은 일본이 약속한 5500억 달러를 대형원전·소형모듈형원전(SMR)·전력망·가스망과 같은 에너지 인프라는 물론 핵심광물·인공지능(AI) 분야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밝혔는데 한국의 2000억 달러 투자 패키지도 유사한 방식으로 집행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만 한국은 일본과 달리 투자 프로젝트의 ‘상업적 합리성’을 따지기로 해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사업은 피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따라서 문서화 과정에서 상업적 합리성의 조건이 어떻게 명시되는지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Q.자동차 품목관세 인하 시점은?
러트닉 장관도 15%라고 확인한 자동차, 자동차 부품 품목관세의 인하 시점은 이르면 11월 1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미 투자 패키지 이행에 필요한 법적 절차를 개시하는 대로 관세를 낮춰주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인하 시점은 관련 법안이 한국 국회에 발의된 달의 1일로 소급되는 방식이다. 이에 정부는 법안 발의 절차를 다음 달 중 마쳐 11월 1일부터 관세가 인하되도록 후속 절차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미국은 유럽연합(EU)과의 협상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자동차, 자동차 부품 관세를 인하한 바 있다.
Q. 1500억 달러 MASGA, 전액 보증·대출?
현금투자에서 제외된 1500억 달러(약 215조 원) 규모의 마스가(MASGA·미국의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협력의 세부 내용이 어떻게 구성될지에도 관심이 모인다. 7월 합의 직후 미국 측은 전액 현금 투자 방식을 주장했지만 마스가에 한해서는 선수금환급보증(RG)과 같은 간접금융 방식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조선업을 되살리기 위해 충분한 선박 발주가 필요한 미국과 현금투자 규모 축소가 협상의 최우선 목표인 한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결과로 풀이된다.
문제는 간접금융 방식으로만 채우기에는 1500억 달러도 만만치 않은 금액이라는 점이다. 호황기에 접어들며 실적이 급증한 지난해 한국 조선3사의 수주 총량이 380억 달러의 4배에 달하는 규모다. 전 세계 선박 수주량의 1%도 차지하지 않는 미국의 조선소 내 생산 물량으로는 채우기 어려운 수치다. 1500억 달러를 미국이 한국 조선소에 주문하는 상선·군함에 적용되는 간접금융에도 활용할 수 있다 해도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목표치를 달성하기 쉽지않을 것으로 보인다.
1500억 달러의 대부분을 간접금융으로 채울 수 없다면 나머지를 현금투자로 메꾸게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소를 만들고 숙련 근로자를 육성하는 건 한두 해 만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더구나 인건비가 비싸고 중화학 공업 인프라가 약해진 미국에서는 더욱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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