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이 3분기 7조 원대 영업이익을 올리며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한때 경쟁사에 밀렸던 고대역폭메모리(HBM) 사업에서 엔비디아에 공급을 시작하는 등 자신감을 회복한 것이 결정적이다. 5세대인 HBM3E는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에 품질 검증(퀄테스트)을 통과해 3분기부터 공급을 시작했고 6세대인 HBM4는 내년 생산 물량이 완판돼 증설 여부를 검토하는 단계다. HBM4에 경쟁사를 앞서는 최선단 공정을 적용한 게 주요했다는 분석이다. HBM4를 기점으로 시장을 선점한 SK하이닉스와 대규모 투자 경쟁을 벌이는 ‘치킨게임’이 본격화할 조짐이다.
30일 삼성전자는 3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을 통해 DS 부문이 매출 33조 1000억 원, 영업이익 7조 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2분기 영업이익(4000억 원)과 비교하면 극적인 반등이다. 이달 14일 삼성전자 3분기 전체 잠정 매출과 영업이익 숫자가 공개됐을 때만 해도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이 5조 원대일 것으로 추정됐는데 이보다 많다.
특히 메모리반도체 매출은 1년 전보다 20% 늘어난 26조 7000억 원을 거두며 분기 기준 창사 이래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 증권가에서는 메모리사업부가 HBM과 DDR5 등 고부가 제품 판매 호조로 7조 4000억 원 안팎의 흑자를 내고 2조 5800억 원대 적자였던 파운드리 등 시스템반도체는 손실을 약 7000억 원 수준으로 대폭 줄인 것으로 추정했다.
반도체 부문 실적을 견인한 것은 단연 HBM이었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HBM 수요가 공급보다 빠른 속도로 늘고 있으며 모든 고객사를 대상으로 5세대인 HBM3E 양산 판매를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엔비디아 공급 시작을 인정한 것이다. AMD에 이어 주요 인공지능(AI) 칩 공급망에 모두 합류한 셈이다. 3분기 HBM 비트 판매량은 전 분기 대비 80%대 중반 수준으로 확대됐고 낸드플래시 역시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 수요 회복으로 영업 흑자 전환에 성공한 것으로 파악된다.
차세대 제품인 HBM4에 대한 자신감은 더욱 두드러졌다. 김 부사장은 “HBM4는 이미 개발을 완료해 모든 고객사에 샘플을 출하한 상태”라며 “11Gbps 이상의 고성능을 저전력으로 만족시킬 수 있다”고 기술적 우위를 자신했다. AI 가속기 시장에 엔비디아는 물론 AMD·브로드컴까지 뛰어들어 이들 간 고성능 경쟁이 심화하며 삼성전자의 HBM4 수요가 크게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HBM4에 최선단 10나노급 6세대(1c) D램과 4나노 파운드리 공정을 적용해 경쟁사 대비 집적도와 성능·전력효율을 크게 높이는 승부수를 던졌는데 이게 통한 것이다.
추가 증설 얘기도 나온다. 김 부사장은 “내년 HBM 생산 계획에 대한 고객 수요를 이미 확보했고 추가 수요가 계속 접수돼 HBM 증산 가능성을 내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는 내년 시설투자 금액이 50조 원대로 회복할 수 있음을 시사한 대목이다. 삼성전자의 올해 시설투자 규모는 47조 4000억 원으로 2024년(53조 6000억 원) 대비 6조 2000억 원가량 감소했다. 올 시설투자 금액 중 반도체 부문은 40조 9000억 원, 디스플레이 부문은 3조 3000억 원을 차지한다.
삼성전자의 이러한 움직임은 HBM 시장을 선점한 SK하이닉스를 정조준한 것이다. SK하이닉스는 3분기 HBM 판매 호조에 힘입어 11조 3834억 원이라는 창사 이래 최대 분기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SK하이닉스는 HBM 선두 지위를 수성하기 위해 투자 규모를 늘릴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설비투자에 최대 29조 원을 투입할 예정인데 이달 29일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2026년에는 올해 대비 상당 폭 늘릴 것”이라고 밝혀 최소 30조 원 이상 투자가 예정돼 있다. 삼성전자는 가격 경쟁도 불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쟁사 대비 HBM3E는 두 자릿수대, HBM4는 한 자릿수대 낮은 가격을 제시하며 고객 확보에 열을 올린다고 알려졌다. 이 때문에 SK하이닉스의 HBM4 가격 인상에도 제동이 걸렸다는 분석이다.
AI발 ‘슈퍼 사이클’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양 사의 HBM 주도권 경쟁은 투자 전쟁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과거 2~3년 주기 호황과 달리 AI 전환으로 반도체 산업구조 자체가 변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증권가는 삼성전자의 HBM 시장 점유율이 HBM4 양산을 기반으로 현재 20%대에서 내년 30% 수준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키움증권은 삼성전자의 HBM 매출이 올해 11조 4000억 원에서 2026년 24조 7000억 원으로 두 배 이상 뛸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전자는 실적 반등 기세를 이어가기 위해 내년에는 D램은 HBM4 양산과 AI용 제품에 집중하고 파운드리는 2나노 신제품과 HBM4 베이스다이 등 첨단 공정 비중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gap@se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