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원자력발전소 2호기가 두 차례 연속 원자력안전위원회 계속운전 심사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원전 업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앞으로 고리2호기를 비롯해 2030년까지 총 10기 원전의 설계수명이 도래하는데 이들에 대한 심사가 줄줄이 뒤로 밀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원전 안전을 핑계로 사실상 계속운전을 막겠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한국원자력학회는 입장문을 통해 “원안위가 실질적인 안전 문제가 아닌 서류 형식을 문제 삼으며 계속운전 허가를 재차 보류한 것에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미 충분히 전문기관의 안전성 검사를 거쳤는데 원전 안전성과 무관한 서류상 미비점을 따지느라 계속운전 승인이 지연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다.
앞서 원안위는 지난달 25일 열린 222차 회의에 고리2호기 사고관리계획서와 계속운전 허가안을 상정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하고 23일 개최된 223차 회의로 논의를 미뤘다. 계속운전의 전제가 되는 사고관리계획서를 함께 상정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사고관리계획서에 항공기 충돌과 대기확산인자 대응 기준이 미비하다는 것도 발목을 잡았다.
사고관리계획서는 이번 회의에서도 위원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장시간 회의 끝에 표결로 승인했다. 원안위가 가급적 위원 만장일치로 안건을 처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결과였다.
이어 원안위원들은 고리2호기의 계속운전 허가안을 심사했으나 진재용 위원(법무법인 강남 변호사)이 반대 의견을 제시하면서 논의가 길어졌다. 고리2호기 주기적안전성평가(PSR) 결과가 제출 기한을 1년 정도 넘겼다는 점과 새로 진행한 방사선환경영향평가 내용이 부실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운영 허가를 받던 1983년 당시와 현재 사정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서류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법률사무소 이세 소속 변호사인 김기수 위원은 이미 사정이 달라진 것을 전제로 평가를 진행했으니 고려 사항이 아니라고 맞섰다.
심의가 길어지자 최원호 원안위원장은 안건을 다음 달 13일 열리는 224차 원안위에 재상정해 충분한 논의를 하자고 중재했다. 다만 원안위원들의 지적 사항은 단시간 내 보완이 어려운 데다 모든 지점을 따져보는 현미경 검토가 이어지면 11월 회의도 마라톤 심사가 될 수밖에 없어 승인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기복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 책임연구원은 “대부분의 나라들이 큰 문제 없이 원전 설계수명 이후에도 설비를 운영하고 있다”며 “기술적으로 확인된 영역까지 하나하나 다 확인하다 보면 심사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리2호기가 이미 설계수명 만료로 2023년 4월부터 가동을 멈춘 상황이라는 점도 문제다. 계속운전 허가 절차를 설계수명 만료 전에 마쳤어야 했지만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 정책 여파로 2022년에야 겨우 관련 절차를 시작해 발생한 일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원안위에서 운영 허가 기간을 2033년 4월로 10년 늘려도 실제로는 7년 정도만 더 쓸 수 있는 형편이다. 고리2호기의 설비 용량(640㎿)을 고려하면 행정 절차 지연으로 약 9341억 원어치의 전력을 생산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월 기준 260억 원의 경제적 손해가 발생하는 셈이다.
이미 한국수력원자력이 계속운전 심사 계획을 보고한 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이 3년에 걸쳐 정밀 검증을 마쳤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외부 전문가가 참여한 원자력안전전문위원회가 7차례 회의를 열고 108건의 질의응답 및 논의를 마치는 등 충분한 심사가 진행됐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다수의 원전 계속운전 심사가 이어질 텐데 매번 이렇게 진행되면 곤란하다”며 “사전에 기술 검토할 영역과 원안위가 검토할 사안을 명확히 구분해 심사 효율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joojh@se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