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네덜란드 ASML과 같은 ‘슈퍼 을(乙)’ 소재·부품·장비 기업 육성에 착수했다. 첨단제품·고부가제품·탄소중립·핵심광물 등 4대 도전 기술을 집중 개발하고 프로젝트당 200억 원 이상의 연구개발(R&D)비를 투자해 15대 슈퍼 을 프로젝트도 가동하기로 했다. 소부장 정책 보험 도입 등 국산 소부장 제품 사용을 장려하는 인센티브도 도입할 예정이다.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부는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소부장경쟁력강화위원회를 개최하고 이 같은 내용의 제2차 소부장 경쟁력 강화 기본계획(2026~2030년) 및 소부장 특화단지 종합계획(2026~2030년), 공급망안정화기금의 소부장 지원 방안 등을 확정했다.
정부가 소부장 경쟁력 강화에 나선 것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되면서 소부장 기술을 국산화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소부장 선도 기술이 상대적으로 미흡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판단에 따른 대책이다.
실제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첨단산업 소재 기술 수준은 83.3점으로 미국(100점), 일본(96.1점)에 비해 뒤떨어져 있다. 중국(80.5점)과의 격차는 2.8점에 불과하다. 정부는 이번 방안을 통해 포브스 2000 중 소부장 기업을 2025년 16개에서 2030년 25개로 확대하고 선진국 대비 기술 수준을 92점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첨단제품 시장 선점형 △범용제품 시장 전환형 △탄소 중립 규제 대응형 △핵심 광물 공급망 확보형 등 4대 혁신 기술에 R&D 역량을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내년 상반기 중으로 ‘소부장 핵심 전략 지도’를 만들어 구체적인 핵심 도전 기술을 도출하고 기술 유형별로 최적화된 R&D 방식을 적용하기로 했다.
또 정부는 인공지능(AI) 소재 개발의 기초가 되는 소재 데이터를 현행 430만 건에서 2030년까지 1500만 건 이상으로 확대하고 민간 AI 소재 자율 실험실을 구축하는 등 AI와 R&D를 결합하는 데도 속도를 내기로 했다. 현재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AI 소재를 개발하는 한계 돌파형 R&D도 2030년까지 5건 추진한다.
15대 슈퍼 을 프로젝트도 2030년까지 가동한다. 슈퍼 을 프로젝트는 한 프로젝트당 200억 원 이상의 R&D 금액을 7년 이상 장기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현재까지 반도체 소재 및 장비, 수소 분야에서 총 3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아울러 정부는 2030년까지 10개 소부장 특화단지를 추가로 지정하고 공장 신설 시 중앙·지방 정부와 앵커 기업, 지원단이 원팀으로 지원하는 ‘소부장 상생 패키지’ 협약도 체결하기로 했다.
국내 수요 기업의 국산 소부장 제품 사용을 독려하기 위한 방안도 마련한다. 소부장 정책 보험을 만들어 국산 제품을 사용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불량, 제품 결함 등 피해를 담보해주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내년 중 이 보험 상품을 시범 도입하고 2027년부터 본격 확대하기로 했다.
이외 공공기관·공기업 등에서 국내 소부장 기업 인증 제품이나 기술 개발 제품을 우선 구매 대상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예정이다. 수출국 산업 프로젝트와 연계해 수출 확대를 장려하고 수요·공급기업의 동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등 수출 다변화 및 확대도 도모한다.
한편 정부는 이 같은 지원 전략을 이행하기 위해 공급망안정화기금 활용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공급망 안정화 효과가 높다면 경제안보 품목에 포함되지 않은 소부장 연계사업에도 기금을 통해 0.3~0.5%포인트의 우대금리를 제공하고 소부장 품목도 공급망 핵심 분야 수준으로 지원하는 식이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재임 이후 자유무역 질서가 무너지고 공급망도 분절화하고 있어 초선도 기술을 가진 국가나 기업만 살아남을 수 있다”며 “한국에도 ASML이나 일본의 화낙과 같은 강력한 을 기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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