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0년 오전 8시 서울역. 직장인 김민수(가명) 씨는 부산 해운대에서 9시 30분에 열리는 중요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열차를 타기로 했다. 10여 년 전이라면 고속철이나 항공편을 이용해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회의장까지 서너 시간이 걸렸지만 하이퍼튜브(하이퍼루프)가 상용화된 후부터는 달라졌다. 김 씨가 탑승한 캡슐형 차량은 튜브(터널) 안에서 자기부상 기술로 떴고 시속 1200㎞의 속도로 질주했다. 서울 하이퍼튜브 탑승 지점에서 부산 하차 지점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0분. KTX의 무정차 운행 시간(1시간 52분)과 비교하면 5분의 1도 안 되는 ‘찰나’의 시간이다. 철로 위를 나는 비행기로 불리는 하이퍼튜브가 현실화하면 우리가 현재 체감하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송두리째 뒤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미래 교통수단의 일종인 하이퍼튜브 개발에 뛰어들면서 ‘초고속 교통 혁명’이 실현될지 주목된다. 하이퍼튜브가 상용화되면 여객기보다 빠르게 종횡무진할 수 있는 획기적인 이동 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공기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 열차가 주행하는 터널 상태를 거의 진공으로 유지해야 하는 과제를 극복해야 하는 만큼 상용화까지 10년 이상의 기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하이퍼튜브는 진공에 가까운 아진공(0.001~0.01 기압) 상태의 튜브를 초음속으로 통과할 수 있는 자기부상 열차를 말한다. 이러한 개념에 대한 관심을 처음으로 불러일으킨 사람은 다름 아닌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다. 그는 2013년 8월 ‘하이퍼루프 알파(Hyperloop Alpha)’라는 제목의 백서를 통해 초고속 교통 시스템의 세부 디자인과 구상을 공개했다. 머스크 CEO는 차세대 운송 수단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 ‘보링컴퍼니’를 별도로 세웠다. 열차는 아니지만 일반 차량이 지하 터널로 이동할 수 있는 신개념 교통을 상용화해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교통 체증 문제를 해결한 바 있다. 이후 버진하이퍼루프원이 2020년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하이퍼튜브 유인 시험 주행을 실시했다.
그동안 열차와 같은 교통 수단이 시속 1000㎞를 돌파하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꿈으로만 여겨져왔다. 공기저항으로 인해 빠르게 움직일수록 공기가 차체를 뒤로 잡아당기는 힘이 커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열차는 레일 위에 있어 바퀴와 레일 사이에도 마찰이 발생한다. 이러한 마찰이 속도를 늦추고 에너지를 소모하게 하는 것이다. 4만 6000㎞ 이상의 세계 최대 고속철도 노선을 보유한 중국도 최고 시속이 약 450㎞다.
결국 하이퍼튜브의 성패는 우주처럼 공기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하이퍼튜브는 레일에 접촉하지 않은 채 자기부상에 의한 비접촉식으로 주행한다. 차량 전자석과 지상 전자석의 밀고 당기는 힘으로 추진력과 자기부상력을 얻어 지상에 닿지 않도록 하는 원리다. 하이퍼튜브 차체 크기는 공기 마찰을 줄이기 위해 일반적인 열차보다는 훨씬 작고 가볍게 개발되고 있다. 마찰이 없어 에너지 소비량이 기존 고속철도 대비 적은 만큼 친환경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전기를 동력원으로 쓰기에 이산화탄소도 배출되지 않는다.
주요 국가들이 속속 하이퍼튜브 개발에 발 벗고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도에서는 세계 최장 길이의 하이퍼튜브 노선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긴 시험용 노선은 2㎞로 중국에 있다. 인도는 20배에 달하는 40㎞에 달하는 시험 노선을 계획하고 있다.
꿈의 기술을 현실로 끌어들이기 위한 제도적 기반도 마련되고 있다. 미국은 고속 이동, 고효율 신교통 수단을 도입하기 위해 2020년부터 교통부 산하에 신교통기술위원회를 두고 관련 법률 및 제도를 개선해왔다. 2021년에는 약 1조 달러(약 1400조 원) 규모의 신교통 인프라 투자에 대한 법안이 상원에서 통과됐으며 해당 법안에는 하이퍼튜브 기술 개발과 교통 시스템 도입을 지원하는 조항이 담겼다. 유럽에서는 유럽표준화위원회(CEN)와 전기기술표준화위원회(CENELEC)가 하이퍼튜브의 안전과 기술 표준을 마련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우리 정부는 올해를 K하이퍼튜브의 원년으로 삼고 올해부터 3년간 총 사업비 127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다만 실현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인 전망도 적지 않다. 튜브 내부를 계속 아진공 상태로 유지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터널 내부 압력이 매우 낮고 외부 압력이 높기 때문에 공기 분자들이 튜브 안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장기간 완벽하게 차단하고 낮은 압력 상태를 유지하는 게 기술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얘기다. 매사추세츠공대(MIT) 프레스에 따르면 캐나다 매니토바대 명예교수인 바츨라프 스밀은 “하이퍼튜브의 내부와 외부 사이에 수천 배의 압력 차이를 유지하도록 설계돼야 하며 자칫 잘못하면 튜브가 찌그러질 위험이 있다”면서 “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 팽창 문제나 지진 발생 가능성 문제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상용화 기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스밀 교수는 “하이퍼튜브와 같은 밀폐형 초고속 운송 수단의 아이디어는 1800년대에도 구상된 바 있다”면서 “하이퍼튜브가 고속철도만큼 흔해지려면 비용 문제를 비롯해 극복해야 할 수많은 근본적인 장벽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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