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가계대출 총량 규제와 부동산 대책, 금융시장 불안이 겹치면서 곳곳에서 시장금리가 역전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저신용자에게 낮은 금리를 적용하라는 정부의 방침마저 현실화할 경우 국내 금리 체계가 완전히 뒤틀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①뒤집힌 주담대·코픽스 금리 차…3년 3개월만 최대
19일 금융계에 따르면 올해 8월 예금은행의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금리(신규 취급액 기준)는 연 4.08%다. 코픽스 금리(2.49%)와의 격차는 1.59%포인트로 2022년 5월(1.79%포인트) 이후 가장 크다.
코픽스는 변동형 대출금리를 산정할 때 쓰는 일종의 기준금리다. 최종 대출금리에서 코픽스를 뺀 값이 커졌다는 것은 은행이 정부의 주담대 관리 요구에 가산금리를 높이는 식으로 총량을 관리했다는 의미다. 실제로 8월 변동형 주담대 금리는 ‘6·27 대책’ 이전인 6월(3.99%)에 비해 0.09%포인트 상승했다. ‘10·15 부동산 대책’에서 실수요자 수요 억제책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흐름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금융 당국이 대출금리 인하를 압박했을 때는 두 금리 간 격차가 급격히 줄었는데 이번에는 그 반대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②연체율 3분의 1인데…중기보다 높은 주담대 금리
정부의 부동산 대출 규제 강화에 주담대 금리가 중소기업 대출 금리보다 높아지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8월 중소기업 대출 금리는 지난해 12월보다 0.58%포인트 내려간 연 4.07%로 변동형 주담대보다 0.01%포인트 낮았다. 두 금리가 역전된 것은 2022년 4월 이후 3년 4개월 만에 처음이다.
주담대보다 중소기업 대출의 부실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올해 7월 말 국내 은행들의 중기 대출 연체율은 0.82%로 주담대(0.29%)의 3배에 육박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의 상생 금융 기조로 자영업자 보증서 대출 금리는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6~8월 5대 시중은행에서 취급된 개인사업자 보증서 대출의 평균 금리는 3.76%로 지난해 10~12월(4.81%)에 비해 1.05%포인트 하락했다.
③부실 확대에 저축銀 대출금리 지속 상승
8월 저축은행 32곳의 평균 가계 신용대출 금리는 15.5%다. 지난해 12월 저축은행 34곳의 평균 금리(15.27%)에 비해 0.23%포인트 올랐다. 같은 기간 한은 기준금리는 3%에서 2.5%로 하락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확대에 따른 수익 감소에 대출금리를 올리는 식으로 대응한 셈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저신용자·저금리’ 정책이 현실화하면 차상위층과의 금리 역전을 포함해 금융권 대출금리 전반이 흔들릴 수 있다.
④기준금리보다 낮은 은행 예금…은행보다 낮은 저축銀
저축은행의 부실은 대출금리 인상과 함께 예금금리를 낮게 유지하는 요인이 된다. 예금을 받아봐야 굴릴 데가 마땅찮아 손실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요 저축은행의 1년 만기 예금금리가 시중은행보다 낮은 상태가 길어지고 있다. SC제일은행의 경우 현재 1년 만기 예금금리가 최고 기준 2.85%, NH농협은행은 2.6%다. 반면 OK저축은행은 2.7%, KB저축은행은 2.5%를 주고 있다.
은행예금 역시 기준금리보다 낮은 곳들이 많다. 한은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평균 정기예금 금리는 올 8월 기준 2.48%다. 5월 한은이 기준금리를 2.75%에서 2.5%로 낮춘 이후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밑돌았다.
⑤관세협상·금융불안에 계속 뛰는 금융채 금리
신한은행에 따르면 17일 금융채 5년물 금리는 2.93%로 6개월 전(2.8%), 1개월 전(2.85%)에 비해 0.1%포인트가량 높다. 한미 관세 협상이 난항을 보이던 1일에는 3.001%로 오르면서 3월 31일(3.02%) 이후 처음으로 3%대를 기록했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한미 관세 협상 문제로 은행권의 자금 조달 비용 역시 올라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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