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커피 등 가공식품 물가가 무섭게 치솟는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가 빵값 상승의 주범으로 꼽히는 밀가루 제조 업체들을 상대로 가격 담합 여부 조사에 나섰다. 최근 빵값 인상이 물가 상승을 주도하면서 소비자들의 체감물가를 끌어올리자 공정위가 제분업계의 가격 결정 과정을 직접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16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공정위는 최근 대한제분·CJ제일제당·사조동아원·대선제분·삼양사·삼화제분·한탑 등 주요 제분사 7곳에 조사관을 보내 현장 조사를 실시했다. 현장 조사에 나간 7개 제분사는 국내 밀가루 시장 점유율 기준으로 상위권 기업들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위법 사실이 드러나면 관련 법에 따라 엄정히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사는 업체들이 출고가와 공급량을 사전 조율하는 방식으로 시장 가격을 인위적으로 올렸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특히 최근 제빵 제품 가격 급등과의 연관성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제분업계 조사는 빵값 고공 행진을 뜻하는 ‘빵플레이션(빵+인플레이션)’과 관련한 원재료 시장 전반을 정조준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통계청이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1% 상승했다. 가공식품 물가상승률은 업체 측의 할인 행사에도 불구하고 6개월 연속 4%대를 기록하며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4월부터 가공식품 물가는 4.1%로 올라섰고 6월에 4.6%로 정점을 찍은 후에 상승 폭이 다소 둔화됐지만 여전히 4% 초반에 머물러 있다. 거기에다 가공식품 중 하나인 빵 가격은 6.5%나 뛰어 전체 평균 상승률을 크게 웃돌았다. 이 때문에 원재료인 밀가루 가격 인상이 제빵 업계 전반으로 전가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공정위의 전방위 조사는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식료품 물가 상승이 시작된 시점은 2023년 초인데 왜 이때부터 오르기 시작했는지 근본적 의문을 가져야 한다”며 “정부가 통제 역량을 상실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을 향해 “담합이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도 크다”며 “가격 조정 명령도 가능한가”라고 연이어 질문하는 등 공정위에 강력하고 적극적인 조사와 대응을 주문했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원재료 시장의 경쟁 실태와 유통 구조, 가격 담합 여부 등을 전면 점검하며 조사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앞서 CJ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당 등 제당 3사의 설탕 담합 혐의와 관련해서도 막판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공정위는 이들 업체의 설탕 담합도 혐의가 있다고 보고 조만간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 격)를 발송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필요할 경우 가격 조정 명령이나 기업분할 등 강도 높은 경쟁 정책 수단을 동원할지도 적극 검토 중이다. 이에 대해 주 위원장은 국무회의에서 “국민생활과 직결된 품목에 대해서는 담합 행위를 철저히 감시하겠다”며 의지를 드러냈다.
이런 가운데 공정위는 정부의 농산물 할인지원 사업을 악용해 가격을 부풀린 혐의로 일부 대형마트에 대해서도 조사에 착수했다. 공정위는 지난달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이마트와 롯데마트 본사에 조사관을 보내 현장조사에 들어갔다. 두 업체는 2023년 정부의 할인지원 사업에 따른 행사 직전 정상가를 인상한 뒤 할인 판매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공정위는 마트의 가격 운영에 따라 소비자가 실제보다 큰 할인 효과가 있는 것처럼 오인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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