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이 추론 특화 인공지능(AI) 칩셋 ‘크레센트 아일랜드’를 공개했다. 내장 그래픽처리장치(GPU) 설계에 고용량 모바일용 메모리를 더해 저렴한 가격으로 추론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엔비디아 투자로 인텔이 GPU를 포기할 수 있다는 관측까지 제기되는 와중 엔비디아가 취약한 중저가 시장에서 독자 영역을 지켜나가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는 평가가 따른다.
14일(현지 시간) 인텔은 미 산호세 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한 오픈컴퓨트프로젝트(OCP) 글로벌 서밋 2025에서 추론 특화 데이터센터 GPU 크레센트 아일랜드를 소개했다. 사친 카티 인텔 최고기술책임자(CTO)는 “AI가 정적 훈련에서 에이전트 AI가 주도하는 실시간 추론으로 전환되며 2028년 AI 연산 80%를 추론이 차지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복잡한 작업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적절한 반도체를 적절한 작업에 배정하는 이기종 시스템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크레센트 아일랜드는 엔비디아 호퍼·블랙웰이나 AMD MI, 인텔 가우디 시리즈 등 전통적인 AI 가속기와는 설계 사상부터 다르다. 기본 아키텍처(설계)는 인텔 CPU 내장 GPU인 Xe3를 개선한 ‘Xe3P’다. 메모리 또한 고대역폭메모리(HBM)나 게이밍 D램(GDDR) 대신 모바일용 LPDDR5X를 사용했다. 샘플 공급 시점도 2026년 말로 계획돼, 본격적으로 보급될 2027년에는 최신 고성능 칩셋과 성능 격차가 더욱 벌어질 전망이다.
태생부터 성능 경쟁 대신 ‘가성비’를 노린 설계다. 고성능·고비용 GPU가 지배하는 AI 학습 대신 철저히 추론 시장을 겨냥한 것이다. 크레센트 아일랜드는 모바일 D램을 사용하지만 160기가바이트(GB) 고용량 탑재로 AI 추론 요구에 대응했다. 4비트 부동소수점(FP4)부터 64비트까지 다양한 토큰(AI 연산단위) 연산을 지원한다. 노트북용 내장 GPU에 모바일 메모리를 결합해 설계·제조 가격을 낮추는 한편 전력 소모도 최소화한 형태다. 인텔은 “공랭식 데이터센터 서버에 맞춰 전력 및 비용 최적화를 이뤘고 추론 작업에 최적화한 대용량 메모리 및 대역을 제공하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엔비디아 투자 유치·칩셋 협력과 별개로 중저가 AI 칩셋 시장은 놓지 않겠다는 의미다. 인텔은 지난달 엔비디아로부터 50억 달러를 투자 받으며 CPU·GPU 협력에 나선다고 밝혔다. 당시 양사는 인텔이 엔비디아 AI 칩셋 맞춤형 CPU를 개발하고 인텔 개인용 CPU 내장 그래픽에는 엔비디아 GPU를 도입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에 인텔이 GPU 사업을 포기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왔었다.
인텔과 엔비디아는 각각 중저가·프리미엄 AI 칩셋 시장을 공략해 AI 인프라 전반을 장악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엔비디아 GPU는 높은 성능과 넓은 범용성으로 AI 칩셋의 ‘표준’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가격이 비싼데다 공급량이 제한적이고, 추론 전용으로 활용하기에는 가성비가 나쁘다. 중저가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빈 자리를 인텔이 저렴한 추론 전용 칩셋으로 채워 시너지를 발휘하겠다는 구상이다. 실제 이날 카티 CTO는 인텔 가우디3 랙의 표준(레퍼런스) 디자인을 공개하며 “가우디3와 엔비디아 B300 블랙웰을 함께 사용하면 총 비용 효율을 1.7배 높일 수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엔비디아의 게이밍·중저가 시장 경쟁력 하락도 인텔이 GPU 개발을 지속하는 동력이다. 엔비디아는 최근 데이터센터향 대형 AI 가속기에 집중하며 기존 주력 사업이던 게이밍 GPU를 외면 중이다. 출시 시점이 늦어지는 한편 성능 개선이 적고, 이마저도 고급형에 집중해 사무용·노트북 등 중저가 시장에서 매력을 잃고 있다.
사실 인텔은 내장형 GPU를 기반으로 PC·노트북 시장에서는 관련 점유율이 50%에 달하는 회사다. 개선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인텔이 지난달 애리조나에서 개최한 ‘인텔 테크투어 2025’에서 공개한 신형 2나노(18A) CPU ‘팬서레이크’에는 최대 12개 Xe3 GPU 코어가 탑재됐다. 전 세대 비 성능은 50%, 전력 사용량은 40% 개선돼 총 AI 연산력이 4배 가까이 늘었다. 특히 엔비디아 DLSS와 유사한 AI 프레임 생성 기능 ‘XeSS’도 강화해 한 번에 여러 장의 프레임을 생성(MFG), 최신 3D 슈팅 게임에서도 끊김 없는 고품질 그래픽을 시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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