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여러 채의 집을 보유하는 것보다 고가의 한 채를 선호하는 ‘똘똘한 한 채’ 현상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가 조만간 내놓을 부동산 대책에 중장기 세제 방향을 담기로 예고한 바 있어 구 부총리의 이런 발언이 사실상 고가 주택에 대한 보유세 강화를 시사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부동산세제가 시장에 미칠 파급효과를 고려해 일정 기간의 유예를 두고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구 부총리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1주택자에게 과도한 공제 혜택이 집중되고 자산시장 과열로 자금이 쏠리면서 똘똘한 한 채 현상이 지속될 수 있다’는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의 지적에 대해 “문제의식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정부는 그동안 다주택에 대한 세금 중과로 다주택 보유를 억제해왔다. 이에 따라 지방에 여러 채를 갖는 것보다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높은 서울 한강벨트 지역의 한 채를 사려는 수요가 늘었다. 이런 현상으로 서울 집값이 급등하고 양극화가 심화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1주택자에게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세 공제 등 세제 혜택이 집중된 것도 이런 흐름을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1주택자는 공시가격 기준 12억 원까지 종부세 기본공제를 받는다. 실거래가가 17억 원 수준인데도 장기보유·고령자 공제까지 적용하면 집값의 최대 80%까지 공제받는 구조다. 반면 다주택자는 기본공제가 9억 원으로 낮고 장기보유·고령자 공제 혜택이 없다.
시장에서는 구 부총리의 발언을 두고 사실상 종부세 인상을 시사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인상 방식은 직접적인 세율 인상 대신 공시가격 현실화, 공정시장가액 비율 상향 등 간접적인 증세 방식이 우선 거론된다. 다주택자 대비 과도한 1주택자에 대한 공제 혜택을 축소하는 방안도 있다. 다만 제도 시행은 일정 유예기간을 거쳐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구 부총리 역시 “내부 검토는 끊임없이 하고 있지만 시장의 세제 민감도가 높다”며 “확정된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주택이라는 게 다양한 요인으로 가격이 형성되는 측면이 있다”며 “내가 살고 있는 집이 하나인데, 여기서 소득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과도한 세금을 매겼을 때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도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정부 내에서는 세제 카드를 섣불리 꺼냈다가는 오히려 부동산값 폭등을 자초할 수 있다는 경계 심리도 상당하다. 과거 노무현·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학습 효과다. 부동산 가격을 타깃으로 국민 전체에 광범위한 파급을 미치는 세제를 선별적으로 손질하는 것 자체가 무리수인 데다 정작 정책 효과 또한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보유세를 단계적으로 올리겠다는 내용의 방향성을 예고하는 선에서 세제 정책을 담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번 대책에서 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 등 규제지역이 서울 전역과 경기 일부로 확대되고 추가 대출 규제 등이 포함되는 것도 이런 분석에 힘을 싣는다. 당초 서울 마포·성동·광진구 등 ‘한강벨트’와 경기 분당·과천 등 일부 지역만 규제지역으로 지정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서울 전역+알파(α)로 규제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 등으로 지정되면 현재 70%인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40%로 강화되고 총부채상환비율(DTI) 역시 40%로 축소된다. 1주택자가 추가 주택 구입 시 취득세가 중과되고 청약·전매 조건 등이 강화된다. 현재 이 같은 규제지역은 서울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와 용산구다. 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는 최근 3개월간 주택 가격 상승률이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각각 1.3배, 1.5배를 초과할 경우 지정 가능한데 서울 대부분의 지역이 이 요건을 충족한 상황이다.
다만 가격 진정세를 넘어 시장 안정까지 꾀할 수 있겠냐는 전망을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 초강력 규제의 약발이 듣는 기간이 짧아지고 있다는 점은 문제다. 문재인 정부 시절 15억 원 초과 주택에 대한 대출 금지 조치의 효과가 6개월 정도 간 반면 6·27 대책에 따른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6억 원 일괄 한도 제한은 넉 달 정도에 그쳤다. 차주들의 특성을 감안하지 않은 일괄적인 규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2019년 ‘LTV 0% 규제’ 도입 당시 그 효과가 반년은 갔지만 이제는 부동산 시장의 맷집이 세져서 고강도 규제에도 가격이 빠지지 않고 있다”며 “규제에 대한 시장의 내성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반복되는 금융 규제는 수도권 부동산 시장을 자산가 중심으로 재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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