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마시는 음료의 온도가 정신 건강과 소화 기능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최신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인종에 따라 온도의 영향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돼, 서구식 식문화가 아시아인에게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을 수 있는 등 맞춤형 건강 관리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10일(현지시간) 의학 전문 매체 '메디컬 익스프레스'에 따르면 미국 샌디에이고 주립대 역학과 톈잉 우 교수 연구팀은 18~65세 성인 415명(아시아인 212명, 백인 203명)을 대상으로 음료·음식 온도와 건강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를 영국 영양학 저널에 최근 발표했다. 참가자들은 평소 차갑거나 따뜻한 음료·음식을 먹는 빈도와 함께 우울, 불안, 불면, 소화 불편감 등을 설문으로 답하는 방식으로 연구가 이뤄졌다. 또한 여름철과 겨울철로 나눠 계절별 섭취 패턴도 함께 파악했다.
연구팀은 냉장고에서 바로 꺼낸 음료나 얼음을 넣은 물·우유·주스를 '차가운 음료'로, 40도 이상의 커피나 차를 '따뜻한 음료'로 분류했다. 음식도 실온 이하의 샐러드·샌드위치·초밥은 차가운 음식, 30~40도 이상의 따뜻한 국물 요리나 익힌 채소가 들어간 밥은 따뜻한 음식으로 구분했다.
분석 결과, 아시아인은 여름철 차가운 음료를 많이 마실수록 불안 수치가 증가했다. 복부 팽만감도 함께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가운 음료 섭취량을 세 그룹으로 나눴을 때, 가장 많이 마신 그룹은 가장 적게 마신 그룹보다 불면증 점수가 1.26점 높았다. 반대로 백인 참가자들은 겨울철 따뜻한 음료를 자주 마실수록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다. 불면증 수치가 낮아지고 가스 증상도 줄어들었다. 따뜻한 음료를 가장 많이 마신 그룹은 가장 적게 마신 그룹보다 우울증 점수가 1.73점 낮았다.
연구팀은 이러한 차이가 인종별 체질과 문화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평소 손이 차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서 음료 온도의 영향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손이 찬 것을 혈액순환 저하의 신호로 해석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차가운 음료를 가장 적게 마신 중국인 참가자들은 부작용을 덜 경험한 반면, 인도계 아시아인들은 차가운 음료와 건강 문제 사이에 더 강한 연관성을 보였다.
연구팀은 차가운 음료가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메커니즘으로 체온 저하와 장내 미생물 균형 변화를 지목했다. 기존 동물 실험에서는 차가운 음료가 장내 미생물 군집을 교란시키고, 노인의 심부 체온을 낮추는 것으로 확인됐다. 장내 미생물 불균형과 체온 저하는 소화 장애는 물론 정신 건강 문제와도 연관이 있다. 반대로 따뜻한 물을 마시거나 온열 요법을 사용하면 혈액순환이 개선되고 위장 증상이 완화되며 체온이 적정 수준으로 유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를 이끈 톈잉 우 교수는 "음료와 음식의 온도처럼 단순해 보이는 요소가 실제로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며 "특히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은 노인이나 손발이 찬 사람은 차가운 음료에 더 취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서양 영양학에서는 음식 온도를 거의 다루지 않지만, 전통 중국 의학이나 인도 아유르베다에서는 오래전부터 차가운 음식을 경계하고 따뜻한 음식을 권장해왔다"며 "이번 연구가 그런 전통적 지혜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한 첫 사례"라고 강조했다.
특히 아시아는 전 세계 인구의 60%를 차지하고, 아시아인은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이민자 그룹이다. 미국으로 이주한 아시아인들은 언어와 식습관에서 문화 적응을 겪지만, 미국에서는 차가운 음료와 음식 소비가 훨씬 많아 건강상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지적이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는 미국 내 아시아인과 백인을 대상으로 냉·온 음식 및 음료 섭취가 정신 및 장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최초의 연구"라며 "인종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건강 증진 정책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우 교수는 "다음 단계로는 더 엄격한 장기 추적 연구와 개입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며 "가정과 식당에서의 일상적인 선택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더 명확히 규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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