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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한파와 실패자 주홍글씨에 두 번 우는 스타트업 퇴직자[벼랑 끝 벤처 생태계]

임금 체불 5번에 퇴사후 정신과 상담'

역대급 취업난…장기 백수 신세 전략





직장인이 한 달 동안 땀 흘려 일한 노동의 대가인 월급은 스타트업에서 그저 ‘사소한 돈’이었다. 임금 체불이 일상적으로 발생했지만, 회사는 이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지 않았다.

20인 이하 게임 스타트업에서 서비스 기획자로 2년간 근무한 서른 살 김 모 씨는 임금 체불 문제를 반복적으로 겪다가 올해 1월 결국 회사를 떠났다.

총 5번의 임금 체불을 겪은 김 씨는, 그때마다 회사가 내놓는 황당한 변명과 안일한 대처에 지쳐갔다. 예컨대 ‘세무대리인 인수인계 과정 오류’, ‘국가지원사업 지원금 수령 오류’ 등 기초적인 실수들이었다.

게임업계에 대한 애정 하나로 버티던 김 씨는 결국 임금 체불이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을 깨닫고 퇴사를 결심했다. 그는 “투자금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스타트업은 대표의 경영 능력 부족 등으로 투자를 받지 못하면 임금 체불이 불가피한 구조”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고금리와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퇴직자들에게 재취업은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다. 국내 이공계 명문대 포스텍 출신 박 모 씨는 근무한 스타트업 3곳에서 모두 구조조정을 겪었다. 그는 “지난해 10월만 해도 서류를 내면 70%는 연락이 올 정도로 채용 시장이 좋았는데, 지금은 서류 합격률이 20~30%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대기업 마케팅 직군에서 2022년 테크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윤 모 씨도 당시 결정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빠른 성장 가능성에 끌려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도전을 선택했지만, 합류 직후 마주한 현실은 구조조정이었다.

투자 혹한기 속 아무런 준비 없이 퇴사한 마 씨에게 스타트업 채용 시장은 더욱 가혹했다. 동종 업계에서 구조조정이 잇따르며 고용 환경은 최악이었고, 마 씨에게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그는 “스타트업에서 여러 일을 겪다 보니 절대 다시는 스타트업에 가지 않겠다는 각오가 생겼다”며 “대기업 위주로 채용 준비를 했고 지난해 말 취업에 성공했다”고 한숨을 돌렸다.

어려운 고용 시장에 질린 퇴직자들은 실패자라는 주홍글씨에 한 번 더 무너졌다.

지난해 한 플랫폼 스타트업에서 퇴직한 정 모 씨는 퇴직금을 받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렸다. 생계를 위해 재취업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는 “퇴사 이후 재취업 과정에서 과거보다 서류 합격률이 크게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채용 시장이 어려워진 것일 수도 있지만, 전 직장 경력이 도움이 안 된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국내 여행·숙박 플랫폼에서 비개발 직군으로 근무했던 30대 류 모 씨도 퇴사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구조조정 대상자에 올랐다는 자괴감을 꼽았다. 그는 “재취업을 해야 하는데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나오게 되니 자존감이 크게 떨어졌다”며 “다른 회사에서 나를 어떻게 볼지 고민이 크다”고 했다.

고통스러운 퇴사의 기억은 재취업 압박감으로 퇴직자들을 짓눌렀다.

화장품 스타트업에서 마케팅 직무를 맡았던 32살 박 모 씨는 정들었던 회사가 갑자기 폐업하면서 차가운 고용시장에 내몰렸다. 실업급여가 끊기자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한 판촉 아르바이트가 생계 수단이 됐다. 불안정한 삶 속에서도 첫 직장의 나쁜 기억이 깊게 각인돼 취업 의지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그는 “짧게 일하다가 다시 쉬는 일이 너무 익숙해졌다”며 “첫 직장에 대한 기억이 너무 안 좋다 보니 다시 이력서를 쓰는 게 큰 부담”이라고 털어놨다.

허위 채용 공고 등 스타트업계의 채용 시스템 난맥상도 퇴직자들을 두 번 울렸다.

보안 스타트업에서 근무했던 30대 초반 여성 마 모 씨는 재취업 과정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재취업을 위해 동종 업계 스타트업 채용 공고에 지원했지만, 회사 담당자로부터 “채용 계획이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허위 채용 공고는 스타트업들이 회사 위기를 감추기 위한 일종의 속임수라고 생각된다”며 “보상 없이 퇴사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도 힘들지만, 재취업 과정에서 겪는 고충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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