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전체 순자산이 사상 처음으로 250조 원을 넘어섰다. 국내외 증시 랠리와 원자재 가격 상승, 투자자 저변 확대가 맞물리며 자금이 폭발적으로 유입된 결과다. 시장 전문가들은 ETF가 일부 전문 투자자의 도구를 넘어 전 국민이 활용하는 ‘대표적 투자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2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전날 기준 국내 ETF 전체 순자산은 250조 9898억 원이다. 지난해 말(173조 5638억 원) 대비 45.03% 급증한 규모다. 지난달 15일 240조 원을 넘어선 지 불과 16일 만에 10조 원이 추가 유입됐다. 직전 10조 원 증가까지 걸린 19일을 사흘이나 앞당긴 셈이다.
ETF 시장 확대는 ‘에브리싱 랠리’를 보이는 글로벌 자산 시장의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인공지능(AI) 산업 성장 수혜로 한국과 미국, 중국 등 주요국 증시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 가운데 세계 지정학적 불안과 공급망 재편에 따른 광물 전쟁 여파로 원자재 가격마저 들썩이면서 다양한 자산군이 동반 강세를 보였다.
국내 증시는 올 들어서만 50% 가까이 늘어나며 사상 최초로 3500을 넘어섰고 미국 증시 역시 올 4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부과로 주춤했지만 최근 다시 연고점을 경신하며 상승 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중국 증시도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등 테크 업종 강세에 힘입어 좋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 대표 원자재인 금 가격은 올 들어서만 43% 넘게 증가해 트로이온스당 4000달러 고지가 눈앞에 있으며 은 가격도 60% 넘게 올랐다.
여기에 순환매 주기 축소와 변동 장세 빈도 증가에 따른 투자 난도 상승이 더해지며 투자자들이 전문가 손길을 빌려 시장에 접근이 용이한 ETF 수요가 급증했다. 개인들의 주식 투자 열풍이 곧 국내 ETF 시장 성장으로 직결됐다는 분석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주식거래 활동계좌 수는 730만 개 넘게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연간 증가분(874만 4887개)의 약 84%에 해당하는 규모다. 특히 지난 한 달 동안에만 121만 3534개가 늘어 월별 증가분 기준으로 지난해 2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위험을 분산하면서도 특정 테마나 지수를 손쉽게 추종할 수 있는 장점이 부각되면서 ETF에 대한 대중적 신뢰가 확산하는 분위기다. 조재민 신한자산운용 대표는 “ETF 순자산 250조 원 돌파는 단순한 규모의 확장이 아니라 국민 자산이 예금에서 투자 상품으로 본격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특히 자기 주도형 투자 문화가 자리 잡는 과정에서 ETF가 국민 재테크의 핵심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 ETF 시장 성장은 단순히 규모 확대에 그치지 않았다. 운용사별 전략과 상품 특색에 따라 성과가 갈렸다. 순자산 상위 10개 운용사 모두 지난해 말과 비교해서 순자산이 크게 늘었지만 증가율에서는 뚜렷한 차이가 났다.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이 올해 무려 190%에 달하는 증가율을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순자산 규모가 지난해 말 9546억 원에서 전날 기준 2조 7614억 원으로 3배 가까이 폭증했다. 순자산 순위도 기존 10위에서 8위로 올라섰다. 지수 대비 초과 성과를 추구하는 액티브 ETF가 레버리지(일일 수익률 2배 추종)를 웃도는 성과를 기록하며 압도적인 운용 역량을 입증했다.
순자산 5위에 해당하는 신한자산운용도 올해 순자산을 5조 원 넘게 불리며 존재감을 키웠다. 최근에는 ETF 순자산 10조 원 돌파라는 쾌거를 달성했다. 우수한 리서치 역량을 바탕으로 업종 내 우수 기업을 선별해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TOP3플러스’ ETF가 투자자들에게 큰 호응을 끌어냈다.
올해 방산과 배당 테마에서 순자산 1조 원이 넘는 인기 상품을 탄생시킨 한화자산운용은 ETF 순자산이 지난해 말 대비 2배 넘게 늘어났다. NH아문디자산운용과 하나자산운용은 공격적인 마케팅과 대대적인 조직 개편 효과로 세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시장점유율 3위에 해당하는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올해 금 현물 ETF 인기에 힘입어 최근 순자산 20조 원 돌파에 성공했다. 한국투자신탁운용과 치열한 3·4위 경쟁을 벌이고 있는 KB자산운용의 순자산도 올 들어 45% 늘며 20조 원 앞까지 다다랐다.
국내 ETF 순자산 1위에 빛나는 삼성자산운용은 올해 순자산이 30조 원 가까이 늘어나며 국내 운용사 처음으로 100조 원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삼성자산운용과 국내 ETF 업계를 양분 중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경우 올해 순자산 증가율이 전체 평균에 못 미치는 31.76%를 기록하며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ETF 시장의 성장이 대형사 쏠림으로만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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