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KOTRA가 있듯이 일본에는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가 있다. 두 기관 사이의 역사도 깊어 첫 정기 협의회는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직원들끼리 일명 ‘K-J 협의회’라 부르는 이 자리는 매년 서로 벤치마킹할 부분과 협력 과제를 찾으며 60년 가까이 지속됐다.
이틀 전 도쿄에서 열린 K-J 협의회 현장 분위기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미래’였다. 참석자들은 한국과 일본이 미래에 어떤 산업 분야에서 협력하고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지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무엇보다 미중 갈등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정책은 한일 모두에게 공통 리스크로 공급망 재편과 통상 환경의 변화에 따른 위기감이 공존했다.
KOTRA는 한일 간 새로운 협력 모델을 발굴하고자 미래 협력이 유망한 4대 전략산업을 제시했다. 수소·2차전지·조선·반도체다. 이들 산업은 글로벌 경쟁이 치열하지만 동시에 전략적 협력이 필수 불가결하다. 양국 모두 세계 3위권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경쟁을 넘어 협력할 경우 시너지 창출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공급망 취약성을 극복하고 기술 자립을 강화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산업이어서 협력의 전략적 가치가 크다.
실제 기업 현장에서도 한일 간 전략 산업 협력 사례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현대차그룹과 도요타는 수소차·연료전지 등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서 공동 연구와 기술 교류를 확대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차세대 패키징센터를 일본 요코하마에 신설하고 일본 반도체 소재·물류사가 한국에 대형 투자를 단행하는 등 첨단산업 공급망 협업 확대를 위한 상호 현지화 사례들도 있다. 대기업 중심 협력에 더해 중소·중견기업, 혁신기술 기업에 이르기까지 한일 경제협력의 저변은 넓어지고 있다.
한일 미래 협력은 세 가지 축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기술 교류다. 각자가 보유한 기술을 상호 보완해 시장 확대를 노리는 전략이다. 둘째는 공동 사업이다. 일본의 기술력과 한국의 생산 역량을 결합해 합작 투자와 파일럿 프로젝트를 추진해 실질적 협력 모델을 개발할 수 있다. 끝으로 제3국 공동 진출이다. OCI홀딩스는 일본 화학 전문 기업인 도쿠야마와 손잡고 최근 말레이시아에 반도체 소재 합작 공장을 착공해 글로벌 시장 확장을 모색 중이다. 30여 년간 한일 기업의 제3국 공동 프로젝트는 47개국 133건, 규모로는 260조 원에 달한다. 이는 한일 협력이 동북아를 넘어 전세계로 확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제조 강국인 한국과 일본이 상호 기술과 경험을 합치면 더 큰 시너지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산업 협력은 경제·사회 구조적 문제 해결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국과 일본은 저출산·고령화, 인구 감소, 수도권 집중이라는 사회문제에 직면해 있다. KOTRA는 이에 착안해 2021년부터 일본 지방자치단체의 디지털 전환(DX) 실증 사업에 한국 기업들을 연결하고 있다. 혁신을 위한 아이디어와 기술은 한국이, 이를 증명할 인프라는 일본이 제공하며 양국 공동 과제 해결의 단초를 찾는 것이다. 실제 우리 기업의 인공지능(AI) 솔루션이 시즈오카현의 노후된 배수 설비 진단에 활용되기도 했다.
다양한 협력 모델의 확대는 경제·산업 생태계의 발전뿐 아니라 양국 관계의 장기적 개선 동력도 될 수 있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넘어 새로운 경제·산업 협력의 틀을 확장하기 위해 KOTRA는 한일 교류의 플랫폼으로서 중심 역할을 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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