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이후 해외 투자에 집중하며 네이버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던 이해진 당시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올 3월 네이버 이사회 의장으로 7년 만에 복귀했다. 이 의장이 네이버 임직원에게 던진 복귀 일성은 “네이버는 인터넷과 모바일 시대를 지나 인공지능(AI) 시대에도 제 역할을 해야 한다”였다.
현재 네이버는 주축 사업인 검색 사업 매출 비중이 2015년 78.06%를 정점으로 올 상반기 35.9% 수준까지 쪼그라들었다. 그 틈을 커머스 사업이 메웠지만 성장 지속성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네이버파이낸셜 매출의 절반은 네이버 플랫폼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이 의장은 취임 직후 AI 사업에 박차를 가했지만 네이버가 안고 있는 이 같은 과제를 AI만으로 극복하는 데는 한계가 분명했다. 이에 이 의장이 네이버의 돌파구로 찾은 키워드가 바로 스테이블코인으로 대표되는 디지털금융이다. 정보기술(IT) 업계의 한 관계자는 “네이버의 쇼핑과 검색·페이 등 모든 사업은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며 “디지털금융을 도입함으로써 네이버의 외연을 넓히고 기존 사업의 글로벌 진출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의장이 두나무와의 협업을 통해 그리는 네이버의 사업 전략은 △모든 사업의 글로벌화 △새로운 금융 인프라 시장 선점이라는 두 축이다. 이 의장이 보는 네이버의 미래에는 국경이 없다. 네이버가 두나무와 손잡고 스테이블코인을 발행·운영할 경우 기존 네이버페이나 신용카드 기반 지급 결제 시스템과 별도의 지급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웹툰이나 콘텐츠·쇼핑에 연계할 경우 해외 어디서나 결제와 지급이 가능해 사실상 해외 진출 효과가 가능한 구조다. 김갑래 자본시장 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신용카드나 지급 결제 시스템이 잘되고 있는데 굳이 스테이블코인이 필요하느냐는 지적이 있지만 이용자 입장에서도 수수료가 저렴해지고 결제 장벽이 낮아진다”며 “특히 신용카드 이용을 위해 필요한 전자결제대행사(PG)나 밴(VAN)사가 없어도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는 금융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나라에도 네이버가 온라인 커머스 사업을 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된다는 의미다.
글로벌 AI 사업 확장에도 스테이블코인이 필수적이다. AI 에이전트가 국경을 초월해 자율적으로 서비스를 실행할 경우 스테이블코인이 제격이다. 제러미 알레어 서클인터넷그룹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1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에이전틱 경제는 블록체인 기반의 중개형 가치 교환 시스템을 토대로 구축될 것”이라며 “스테이블코인이 주요 교환 수단으로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서클은 스테이블코인 중 하나인 유에스디코인(USDC)의 발행사다. AI 패권 전쟁을 벌이는 구글은 이미 AI 에이전트용 스테이블코인 결제 프로토콜 AP2를 공개했다. 코인베이스·이더리움재단 등과 협업했다.
네이버가 개발 중인 커머스 특화 AI 에이전트의 경쟁력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AI 에이전트를 중심으로 미국 포시마크나 일본 소다, 스페인 왈라팝, 한국 네이버플러스 스토어도 연동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예를 들어 국내 이용자가 “예산 20만 원, 러닝화”라고 명령하면 에이전트가 네이버 글로벌 생태계에서 상품을 찾아내고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까지 마치는 식이다. 네이버의 핵심 사업인 커머스 사업이 미래에도 경쟁력을 강화하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두나무가 운영 중인 코인 거래소 업비트의 현금 창출 능력은 네이버가 AI 연구개발에 투입할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캐시카우가 될 수 있다. 두나무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조 1863억 원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5491억 원으로 집계됐다.
스테이블코인 자체도 네이버의 새로운 핵심 사업 축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네이버 내부에서는 “커머스보다 금융이 더 커질 것”이라는 기대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이지은 대신증권 연구원은 “장기적으로는 스테이블코인을 담보로 확보한 예치금을 활용해 운용 수익을 올리거나 스테이블코인을 담보로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등이 가능해진다”고 전망했다. 이미 해외에서는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테크 기업들이 전통 금융 시스템을 파괴하고 새로운 뱅킹을 제공하는 이른바 ‘아마존 뱅크’의 탄생 시점이 임박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새로운 자산 거래 시장도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월가에서는 블랙록을 중심으로 주식은 물론 부동산·미술품 등 거래 가능한 모든 자산을 블록체인으로 옮기는 ‘자산의 토큰화’ 추세가 가시화되고 있다. 두나무 등 블록체인 업계가 오래 전부터 주목한 분야다. 김 수석연구위원은 “주식 거래 청산에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도입될 수 있으며 이 경우 실시간으로 거래가 완료돼 자금 흐름이 더욱 빨라지고 거래의 편의성은 높아진다”며 “정부에서 제도를 만들 경우 전통 금융기관보다 기술적 노하우를 갖춘 네이버와 두나무 같은 기업들의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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