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서명한 ‘H-1B 비자 수수료 10만 달러(약 1억4000만 원)’ 포고문에 “재량에 따라 특정 회사·산업에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관세 사례에서 볼 수 있듯 H-1B 비자를 테크·금융계 또는 발급자 80%를 차지하는 인도·중국과의 ‘협상 카드’로 활용하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따른다.
21일(현지 시간) 백악관이 공개한 H-1B 비자 관련 포고문의 1조 C항에는 “국토안보부 장관 재량에 따라 해당 외국인 고용이 국익에 부합하고 미국 안보나 복지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시 개별 외국인, 특정 회사 또는 산업의 모든 외국인에게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미 정부가 허가할 시 산업 전체나 개별 기업이 H-1B 비자 신규 발급에 10만 달러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이에 트럼프 정권이 H-1B 비자 의존도가 높은 빅테크·금융계 ‘목줄’을 쥐기 위해 파격적인 수수료 인상안을 꺼내든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이어진다. 실제 미 이민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6월까지 H-1B를 가장 많이 발급 받은 기업은 아마존(1만44건)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5189건), 메타(5123건), 애플(4202건), 구글(4181건) 등 매그니피센트(M)7 빅테크 중 5곳이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JP모건체이스(2440건), 딜로이트컨설팅(2353건) 등 금융계 거대 기업도 각각 발급 건수 8위, 10위를 차지했다.
미 산업계는 트럼프 행정부가 H-1B 수수료 면제를 미끼로 기업에 미국 내 투자·저리 대출을 요구할 수도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는 현 발급 추세에서 H-1B 수수료가 10만 달러로 인상된다면 미국 고용주들이 매년 140억 달러(약 19조5000억 원)를 부담하게 된다고 추산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2기 취임 직후 자신에게 비판적인 로펌들을 정부 계약 중단·연방 건물 출입 차단으로 압박해, 미 행정부에 수억 달러 상당 무료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강요했었다는 전력도 이 같은 시각에 힘을 싣는다.
진행 중인 인도·중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H-1B가 압박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H-1B 발급자 중 인도와 중국인 비중은 각각 70%, 10%를 상회한다. 실제 H-1B 수수료 인상 발표 직후 인도 외교부는 공식 성명을 통해 우려를 표했다. 인도 내에서는 정부의 소극적 대처에 대한 비판 여론도 거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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