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하이브리드차(HEV)를 중심으로 친환경차 라인업을 대폭 강화한다. 미국 정부의 고관세와 전기차(EV) 보조금 폐지 등 복합 위기에 대응해 인기 차종인 하이브리드 모델을 18개로 현재보다 2배가량 확장하고 신규 모델인 주행거리연장형전기차(EREV) 개발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이를 통해 2030년 글로벌 시장에서 555만 대를 판매하겠다는 애초 계획을 수성하겠다는 전략이다.
현대차(005380)는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더 셰드에서 국내외 기관 투자자 등을 대상으로 ‘2025 최고경영자(CEO) 인베스터 데이’를 열고 이 같은 중장기 사업 계획을 공유했다. 2019년부터 시작된 CEO 인베스터 데이가 해외에서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은 “현대차는 글로벌 판매량 확대, 생산 거점 확보, 다각화된 포트폴리오 등을 바탕으로 글로벌 자동차그룹 톱3라는 위치에 올랐다”며 “불확실성의 시기를 다시 마주했으나 이전의 경험처럼 또 한 번 위기를 극복하고 변화를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가 올해 CEO 인베스터 데이 개최지로 미국을 선택한 것은 급변하는 현지 시장 상황에 대한 정면 돌파를 선언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 판매량은 지난해 91만 1805대로 전체의 22%에 달하는 최대 시장인데 올 들어 경영 환경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4월부터 현대차가 미국에 수출하는 차량은 25% 관세를 부담하는 데다 이달 말 전기차 구매 보조금(대당 최대 7500달러) 폐지를 앞두면서 비용 상승과 전기차 수요 위축이 불가피해진 탓이다.
현대차는 이에 발맞춰 기술 강점을 갖춘 하이브리드차 개발에 힘주기로 했다. 현재 8개인 하이브리드차 모델을 2030년까지 18개 이상으로 대폭 늘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중형급 차량을 중심으로 도입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소형·대형·프리미엄차로 확대 적용한다. 내년에는 제네시스 브랜드 최초로 하이브리드 모델을 선보이는 데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탑재해 개선된 주행 성능과 연료 효율을 제공한다.
2027년 출시 예정인 EREV는 친환경차 시장에서 합리적인 선택지로 떠오를 것으로 기대된다. 이 차량은 내연기관 엔진으로전기를 생산해 배터리를 충전하는 방식으로 전기차의 최대 단점 중 하나인 충전 스트레스를 경감할 수 있다. 현대차는 전기차보다 55% 작은 용량의 배터리로 원가 부담을 낮추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EREV를 선보일 계획이다.
현대차는 경쟁력 갖춘 친환경차를 앞세워 2030년 글로벌 판매량 555만 대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미국 관세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장기화 등 위기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제시한 목표치를 유지한 것이다. 이 가운데 친환경차 판매량은 330만 대로 60% 비중을 차지한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당초 계획한 전기차 판매 목표치를 하향 조정한 대신 하이브리드차 판매를 늘리는 식으로 전략을 수정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전기차 판로 개척을 위해 유럽·중국·인도 등 대체 시장을 겨냥한 현지 전략형 모델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내년 유럽에서는 아이오닉 브랜드의 첫 소형 전기차 ‘아이오닉3’를, 중국에서는 준중형 전동화 세단을 출시하기로 했다. 2027년에는 인도를 겨냥한 경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새로 내놓는다.
현대차는 북미 지역에서 중형 픽업트럭 시장에 도전장을 던지며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 등 현지 기업과 협업으로 2030년 출시를 목표로 한다. 내년부터 2030년까지 5년간 신차 개발과 생산 설비 확충 등에 쏟는 투자금만 총 77조 3000억 원으로 기존 계획(70조 3000억 원)보다 올려 잡았다.
다만 미국 관세 여파로 수익성 악화는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는 연결 부문 영업이익률 목표를 올해 6~7%로 수정했다. 지난해 말 제시한 7~8% 대비 1%포인트 낮춘 것이다. 2030년도 당초 제시한 10%에서 8~9%로 내렸다. 올 투자 계획도 16조 9000억 원에서 16조 1000억 원으로 줄였다.
현대차는 지난해 발표한 ‘밸류업 프로그램’를 추진하며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도 시행하기로 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올해부터 2027년까지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을 포함해 매년 최소 35%의 총주주환원률(TSR) 기준 주주환원 정책을 시행하고 주당 최소배당금(DPS) 1만 원 등의 주주환원정책을 이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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