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종을 중심으로 급등하고 있지만 개인투자자들은 주도주 대신 낙폭과대주를 집중적으로 사들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기 급등에 부담을 느끼며 무리한 상승 베팅을 꺼리는 모습이다. 최근 호조에도 불구하고 고평가 부담이 여전히 남아 있는 미국 증시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18일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들은 이달 들어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 기업 시놉시스 주식 1억 2744만 달러(약 1764억 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이는 이달 순매수 3위에 해당한다. 시놉시스는 앞서 미중 갈등 여파로 올 3분기 실적이 시장 기대치를 하회했다고 밝히며 주가가 급락했다. 실적 발표날인 9일(현지 시간) 하루 동안에만 주가가 35% 넘게 떨어졌다. 이에 국내 증권사들도 보수적인 접근을 권고했지만 국내 투자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저점 매수에 나섰다.
이처럼 국내 투자자들은 최근 주가는 부진하지만 반등이 기대되는 종목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이달 미국 증시에서 국내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팰런티어로 총 2132억 원어치를 순매수했다. 팰런티어 주가는 최근 고점 부담으로 차익 실현 매물이 출회하며 주가가 52주 최고가 대비 10% 넘게 빠졌다.
아울러 국내 투자자들은 이더리움 보유 기업으로 인기를 끌었던 비트마인도 고점 대비 주가가 많이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2000억 원 가까이 사들였다. 앞서 갑작스러운 최고경영자(CEO) 사임과 올해 실적 전망치 발표 철회로 주가가 급락했던 유나이티드헬스 주식도 이달 1650억 원어치 사들였다. 유나이티드헬스 주가는 최근 1개월 기준으로 10% 넘게 상승했다.
국내 증시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개인들이 국내 증시에서 가장 많은 사들인 종목은 한화오션으로 총 4120억 원어치를 순매수했다. 한화오션 주가가 최근 부진함에도 불구하고 실적 호조와 한미 조선업 협력 기대는 여전히 유효한 만큼 반등이 어렵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개인들은 한화오션 외에 삼성SDI(006400)·현대차(005380)·농심(004370)·LG에너지솔루션(373220) 등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개인들이 이달 들어 총 2360억 원어치를 순매수한 삼성SDI 주가는 52주 신고가 대비 50% 가까이 하락한 상황이다. LG에너지솔루션 역시 주가가 52주 신고가 대비 20% 넘게 하락했음에도 1300억 원 넘게 순매수했다. 최근 미국과 유럽이 자국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중국산 배터리와 원재료에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는 소식이 투심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도 최근 한미 관세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며 주가가 부진하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반면 최근 주가가 많이 오른 종목들은 차익 실현에 집중했다. 개인들은 이달 들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식을 각각 5조 4600억 원어치와 2조 4180억 원어치 순매도하며 대규모로 팔아 치우는 중이다. 국내 운용사 ETF 운용역은 “최근 국내 증시가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은 장세인 만큼 단기 급등에 대한 개인들의 불안이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의 경우 고점 부담과 전통적으로 매년 9월 수익률이 저조했다는 사실 탓에 무리한 베팅은 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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