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부과로 전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심화한 가운데 국내 10대 기업 그룹 중 HD현대 그룹이 가장 우수한 대응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우수한 재무 안정성에 더해 올해 호황을 겪고 있는 조선업 비중이 높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반면 마찬가지로 재무 안정성은 탄탄한 현대차그룹은 최근 한미 자동차 관세 협상이 난항을 겪으며 우려가 커졌다는 설명이다.
18일 한국기업평가는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컨퍼런스홀에서 ‘2025 한기평 크레딧 세미나’를 개최하고 통상 불확실성에 직면한 국내 대기업 그룹들의 현재 상황을 분석하고 향후 전망을 제시했다.
이날 강연자로 나선 유준기 한기평 전문위원은 먼저 전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고착화’한 현실을 강조했다. 유 위원은 “2020년 2월 코로나 팬데믹과 2022년 엔데믹에 따른 경제활동 재개, 2023년 챗GPT 모멘트에 이은 인공지능(AI) 투자 확대 그리고 올해 미국의 관세 부과 등을 거치며 불확실성이 구조화하고 고착화하며 일상적이게 된 ‘뉴노멀(새 표준)’이 도래했다”고 설명했다. 유 위원은 아울러 국내 기업 그룹이 소비 심리 둔화와 내수 회복 지연, 지정학 위험에 따른 삼중고에 처해 있다고도 지적했다.
유 위원은 다만 이같은 환경 속에서도 몇몇 국내 기업 그룹들의 매출과 이익은 크게 성장했다고 밝혔다. 한기평이 국내 10대 기업 그룹의 과거 5개년 매출과 이익 성장성을 고루 감안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HD현대 그룹은 균형 잡힌 사업 포트폴리오를 발판 삼아 비교군 중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했다. 주력 사업인 조선업이 2021년까지 오랫동안 불황기를 거쳤음에도 정유화학과 건설장비 부분이 그룹의 실적 하방을 지지하며 버텨왔다는 설명이다. 2023년 이후부터는 상황이 역전되며 조선과 전력기기 부문이 그룹 상승세를 견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HD현대그룹과 함께 현대자동차 그룹도 최근 5개년 동안 매출과 이익이 크게 성장했다. 완성차 부문이 그룹 전반의 외형 성장과 견조한 실적을 견인했다는 평가다. 유 위원은 “주력 산업인 자동차 부문 경쟁력 강화에 투자를 집중해 온 결과”라고 평가했다.
SK그룹의 경우 반도체와 배터리 부문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사업을 확잠한 덕에 올해 AI 메모리 시장 성장 수혜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쟁사인 삼성그룹에 대해서는 반도체 업황 호황에 수혜를 누리긴 했으나 실적에서 비교적 높은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고 짚으며 매출과 이익 성장이 정체 돼 있다고 평가했다.
포스코와 롯데그룹은 이익이 감소하는 추세다. 포스코 그룹의 경우 2020년 2차전지 소재를 양대 축으로 하는 사업 포트폴래오 재편에 투자를 집중했다. 하지만 이후 전방 수요가 둔화하며 영업 실적이 내리막길을 걸었다. 롯데 그룹은 화학과 바이오 부문 투자에 집중했지만 화학 업종 불황으로 그룹 전반의 영업 수익성 저하가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적 개선세와 재무 안정성, 국내외 시장 환경 등을 모두 고려한 사업 환경에 대한 경기 대응력 부문에서도 HD현대 그룹이 가장 우수했다. HD현대 그룹은 “투자 성과와 재무 안정성이 뛰어나고 사업 환경도 우호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10대 그룹 중 가장 높은 점수인 5.3점을 부여 받았다. 그 다음으로 한화 그룹이 4.7점으로 높은 점수를 부여 받았으며 뒤를 CJ(4.5), 삼성(4.3), SK·신세계(4.0), 롯데·LG(3.3), 포스코(2.5) 등이 이었다.
현대차 그룹은 우수한 재무 안정성과 실적 개선세에도 불구하고 10대 그룹 중 가장 낮은 점수인 2.0점을 부여 받았다. 자동차 사업 환경이 비우호적이라는 이유에서다. 다만 유 위원은 “투자 성과와 재무 안정성은 현대차그룹이 가장 우수하다”며 “대응이 어렵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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