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금융기관의 지역균형발전 의무를 법에 명시해 비수도권 대출을 확대하자는 더불어민주당의 요구에 금융 당국이 반대하고 나섰다. 현실적으로 수도권에 중소기업이 몰린 상황에서 한정된 정책자금을 지방에 풀면 특정 지역의 사정은 다소 나아질 수 있지만 전체적인 중기 자금난이 커지기 때문이다.
11일 금융계에 따르면 금융 당국은 최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민형배 민주당 의원 등 10명이 발의한 한국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IBK기업은행·신용보증기금법 일부 개정안과 관련해 이 같은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해당 개정안은 개별 정책금융기관의 설립 목적을 규정한 설치법 제1조에 ‘지역균형개발 및 국민경제의 균형적 발전’이라는 문구를 추가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정책금융기관이 대출이나 보증 프로그램을 운용할 때 지방 기업을 중심으로 지원 대상을 선정하도록 강제하는 근거를 만드는 셈이다. 민주당은 “인구 분포와 경제력 집중, 생활 서비스 접근 등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면서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정책금융기관이 보다 능동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며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금융 당국은 이 경우 정책금융기관의 본연의 역할이 제한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당국은 중소기업 지원을 설립 목적으로 한 IBK기업은행의 사례를 들어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상당수 중소기업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데도 지역 소재 업체를 우대하도록 강제하면 중소기업 전반에 대한 지원 수준은 되레 악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설립 목적에 지역균형발전을 명시하는 경우 유연한 자금 지원이 어려워지므로 중소기업 지원의 효율성이 저해될 수 있다”고 밝혔다.
금융 당국은 지역균형발전을 설립 목적에 명시하기보다는 특정 상품에 한해 지방 소재 기업을 대상으로 혜택을 주는 게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고 봤다. 당국은 “지역균형발전은 기관의 목적보다는 일부 보증 상품 공급 과정에서 정책적으로 고려될 수 있는 요소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전했다.
시장에서도 대출 수요자인 기업과 가계가 수도권에 밀집한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가 많다. 지방은행이나 상호금융권조차 지역에서 마땅한 대출처를 찾지 못해 수도권으로 몰리는 실정인데 정책금융기관에 지역 대출을 떠안기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방에 거점을 둔 은행들의 부실 지표가 빠르게 악화하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실제로 전북은행의 6월 말 연체율은 지난해 말 대비 0.49%포인트 급등한 1.58%로 올라섰다. 경남은행(1.02%), 부산은행(0.94%), iM뱅크(0.93%) 연체율도 모두 1% 안팎으로 은행권 평균 연체율(0.52%)을 크게 웃돈다. 지방 내 이자 비용을 감당 못 하는 기업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의미인데 이런 상황에서 정책자금을 투입하면 나랏돈을 낭비할 수 있다. 정책금융기관의 한 관계자는 “기관 설립 목적에 지역균형발전 문구가 들어가면 지방 대출 실적을 어떻게든 늘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기관 평가 때마다 부족한 실적을 채워넣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정책자금을 써야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 당국은 여당이 추진하는 동남권 투자공사 설립법에 대해서는 “동남권을 비롯한 비수도권 지역의 산업 성장과 경제 활력 제고를 위해 정책금융기관을 확대하려는 취지에 동의한다”는 의견을 국회에 전했다. 반면 기획재정부는 공사의 역할이 산은과 수은 등 기존 정책금융기관과 중복돼 비효율이 우려된다며 기관 신설에 반대 의사를 보이고 있다. 동남권 투자공사 설립은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산은의 부산 이전을 대신해 공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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