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와 KOTRA가 지난달 말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개최한 관세 대응 설명회를 찾았다. 두 나라는 글로벌 사우스의 핵심 거점이자 우리 기업이 주목하는 대체 시장이다. 미국이 이들을 포함한 아세안 주요국에 19% 이상의 비교적 높은 상호관세를 부과해 현지에 진출한 기업들은 대응 전략을 찾느라 분주했다.
미국의 고관세 조치는 현지 진출 기업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은 특히 아세안 지역의 중국 우회 수출에 대한 환적 모니터링도 강화하며 최대 40%의 추가 관세를 경고했다. 이 때문에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기업들은 거래 지연, 주문 감소, 원자재 조달 차질 등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관세는 특정 국가의 문제만이 아니고 전 세계 공급망을 덮친 불확실성의 파도였다.
현장을 찾을 때마다 절감하는 것은 아무리 훌륭한 대책도 기업이 모르거나 활용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이다. KOTRA는 올 초부터 ‘관세대응 119’ 종합지원센터를 통해 7000건 넘는 상담을 이어왔고 국내·외에서 50여차례 설명회를 열며 기업과 접점을 넓혀왔다. 이제관세 부담이 실제 발생하는 시점이어서 더욱 정밀한 맞춤형 지원이 필요한 때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물류다. 쿠알라룸푸르에서 만난 한 유통기업 대표는 “미국의 관세 발표와 유예, 변경이 반복되면서 보세창고 수요가 폭증했다”고 전했다. 보세창고는 세금을 당장 납부하지 않고 물품을 보관할 수 있어, 하루 이틀 차이로 발생하는 관세 부담을 줄여준다. 실제로 한 중소기업은 보세창고를 활용해 관세 협상 타결까지 바이어와 협상을 유예시켰고 납기 차질없이 거래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보세창고를 활용하거나 바이어의 관세 전가 등에 대응하다 보면 물류비 부담은 늘어날 수 있다. KOTRA는 이에 관세 대응 바우처를 통해 국제운송 지원 한도를 6000만 원까지 2배로 늘리고 수출물류 협업 네트워크를 확장해 놓고 있다.
기업들이 유용하다고 평한 또 다른 지원책은 미국 관세청(CBP)의 ‘사전 심사제도(e-ruling)’ 대행 서비스다. 이는 수출 전에 원산지를 한국산 등 관세에 유리한 지역으로 인정받아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제도다. 절차와 서류 준비가 까다롭지만, 원산지 사전 판정을 받으면 통관 지연을 줄여 수출길이 한층 수월해진다. 일례로 국산과 중국산 원재료를 혼합해 완제품을 생산하는 중견기업 A사는 이 제도를 활용해 원산지를 한국산으로 판정받고자 KOTRA의 문을 두드렸다. KOTRA는 한국원산지정보원, 관세법인과 협력해 사전심사 컨설팅과 대행 서비스를 확충하고 있으며 현장 애로를 바탕으로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지원을 강화해 나가고자 한다.
이런 노력들은 정부가 이달 초 발표한 ‘미국 관세 협상 후속 지원책’과 맞물려 있다. 정부의 금융 지원에 더해 기존의 관세 119 지원체계를 확장해 기업 현장의 애로사항들을 끝까지 해결하는 것이 목표다. 관세 등 무역환경 변화로 인한 불확실성을 줄이고, 실제 수출비용 경감, 수출 마케팅을 뒷받침하는 것이 KOTRA의 역할이다.
관세라는 거대한 파고를 이겨내려면 그 속살을 샅샅이 파악해야 한다. 수출품이 항구를 떠나 고객 손에 닿기까지 수많은 절차를 거쳐야 하고 그 길목마다 관세는 기업에 짐을 얹고 있다. KOTRA는 수출 현장에서 포착되는 애로에 귀 기울여 그 부담을 함께 지고 덜어주면서 기업이 관세 파고를 넘어서는 데 동반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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