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생성형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을 써서 회사 제품을 디자인했습니다. 이 디자인도 정상적으로 출원 등록될까요?”
최근 들어 특허청 직원들이 현업 디자이너들로부터 이와 유사한 질의를 받고 적절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은 디자인 작업물의 특허청 등록이 가능하냐는 게 대부분 질의의 핵심이다. 디자인 등록은 특허청에 개별 디자인의 지식재산권(IP)을 기재하는 절차다. 특허청이 난감해한 이유는 AI 활용 디자인 관련 별도의 심사기준이 현재 없기 때문이다. 특허청 관계자는 “올해 여러 간담회에서 유사한 질문을 받았다”며 “우선 ‘일반 디자인처럼 출원하면 된다’고 안내했는데 마땅한 절차가 필요해 보여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특허청이 생성형 AI를 활용해 만든 디자인의 지식재산권 등록 기준을 만드는 절차에 착수했다. AI 보편화로 디자인 문턱이 낮아진 가운데 배타적 권리 행사 기준을 수립해 분쟁의 씨앗을 미리 없애기 위해서다. 아울러 특허청은 AI가 무단으로 기존 디자인을 도용했을 때 발생하는 권리 침해 문제도 들여다볼 예정이다.
27일 정부에 따르면 특허청은 내년 상반기 중 생성형 AI를 활용한 디자인 출원 및 등록 가이드라인을 제정할 계획이다. 현재로선 민원인이 디자인을 출원할 때 AI 활용 여부 및 AI 이용 방법을 기재하는 절차가 추가될 가능성이 크다. 특허청은 민원인의 기재 사항을 보고 심사기준에 따라 등록 여부를 판단한다. 특허청이 AI 활용 디자인에 대한 별도의 권리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가이드라인의 가장 큰 쟁점은 AI와 이용자의 기여도를 판가름하는 기준이다. 이용자가 AI를 쓰며 얼마나 구체적으로 디자인을 요구했는지 이용자의 기여도를 인정한다면 어느 수준까지 권리를 보장할 것인지 등 세부안이 마련돼야 한다. 특허청은 이 기준점을 찾기 위해 외부 기관에 연구를 의뢰한다. 특허청은 이달 중 ‘AI를 이용한 디자인의 법적 쟁점 연구‘ 용역을 발주하고 12월까지 연구 결과를 받을 방침이다. 이후 연구 결과를 토대로 내년 상반기 중 최종 심사기준 및 업무지침 등이 수립된다.
아울러 특허청은 AI 디자인의 지식재산권 침해 사례 관련 논의도 시작한다. 특허청은 이번 연구 용역에서 AI가 기존에 등록된 디자인을 무단으로 학습한 경우 지식재산권 침해에 해당하는지 쟁점 파악을 의뢰할 방침이다. 더 나아가 AI가 기존 등록 디자인과 유사한 결과물을 제작했을 때 이용자의 책임 여부도 연구 대상이다. 특허청은 연구 결과를 토대로 AI의 디자인 지식재산권 침해 시 손해배상액 산정과 이용자의 고의 판단 기준 등을 검토할 예정이다. 특허청 관계자는 “중점 사안은 AI 디자인 등록 가이드 마련”이라면서 “필요하면 디자인보호법 개정을 검토해 AI로 인한 디자인 지식재산권 침해 해결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허청이 AI 디자인 등록 기준을 세우는 이유는 AI를 둘러싼 권리 분쟁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AI가 무단으로 데이터를 수집(크롤링)하는 행위에 반발해 지식재산권을 주장하는 분쟁이 다수였다. 그러나 이미지를 생성 AI 기능이 발전하고 이용량도 증가하며 AI 활용 디자인의 권리를 인정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방송통신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생성형 AI 이용자 중 이미지 생성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고 꼽은 이들의 비중은 2023년 3.6%에서 지난해 11.8%로 증가했다. 이미지 생성 AI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미드저니 웹사이트의 8월(1~22일) 방문자 수는 1337만 명에 육박한다.
전문가는 AI 디자인 등록 단계에서 기여도를 속이는 행위를 막을 방법도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재일 특허그룹 디딤 대표변리사는 “AI 디자인 출원 때 디자이너의 기여도를 충분히 속일 수 있다”며 “AI 이용 기재 사항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 이를 거짓으로 기재한 출원인을 제재할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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