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값어치가 떨어진다’는 것은 ‘물가가 상승한다’는 말이다. 물가는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이미 장기간 진행되고 있는 자산 가격이고, 다른 하나는 코로나 이후 충격을 주고 있는 재화와 서비스 가격에 관한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물가에 실물의 수급이 중요한 요인인지, 아니면 화폐의 양이 중요한지에 대해 의견이 갈린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생산성이 계속 향상되는 것을 감안하면 장기적으로는 후자의 영향이 더 크다고 봐야한다. 지금의 물가 상승이 구조적이고 해결하기 어려운 것은 장기간의 재정 확대와 유동성 공급 때문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미 미국, 일본 등 대부분의 국가들이 쌓여 있는 과도한 국가부채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앞으로도 경기 부양과 민생 지원, 국방비 등으로 정부들이 써야할 돈은 더 늘어날 것이다. 게다가 새로운 결제 수단인 스테이블 코인으로 인한 유동성 팽창까지 감안하면 장기 물가 상승은 더욱 불가피해 보인다.
지금의 화폐가 역사적으로 늘 믿음직한 존재였던 것은 아니다. 화폐량이 너무 많아져 그 가치에 대한 의심이 촉발되면 기존 질서가 무너지면서 새로운 화폐로 바뀌었다. 화폐도 일종의 재화로서 그 효용성은 발행자의 신용이나 화폐와 교환해 주기로 약속된 자산의 가치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화폐의 신뢰가 문제되는 사례들이 있다.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한 엘살바도르가 가장 극단적 경우이다. 또 1944년 브레튼우즈 체제가 결성될 때 달러로 바꿔가면서 미국에 맡겼던 금을, 유럽 국가들이 간혹 인출하는 것도 한 예다.
개인들의 입장에서 급등하는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면 내 자산의 실질가치가 급락한다. 쉬운 예로 서울 아파트를 가진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를 생각하면 된다. 만일 가격이 상승하는 자산의 종류가 많아지면 더욱 심각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여기서 명심할 점이 하나 있다. 주식을 비롯한 모든 자산의 적정 가치는 그 시대의 상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형성된다는 것이다. 즉, 한국 증시가 지금까지 받아왔던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순자산비율(PBR) 밸류에이션(평가가치)의 적정 범위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란 얘기다. 국내 주식에 대한 투자 수요가 본격적으로 확대되면 ‘코스피 PBR이 최근 10년의 평균 수준까지 와서 부담스럽다’는 식의 판단은 유효하지 않다.
전문가들을 비롯한 많은 투자자들이 여전히 ‘기업 실적 증가가 동반되지 못할 경우 코스피의 상승세가 얼마 못 갈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정부의 목표치 달성은 충분히 가능하고, 만일 실적 증가까지 동반된다면 주가는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다. 국내외 투자자의 절박한 잠재 수요가 그만큼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