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반도체 산업 부활 기치를 내건 라피더스의 고이케 야쓰요시 최고경영자(CEO)가 글로벌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수주 미진 우려에도 인공지능(AI) 수요가 막대해 문제 없다는 자신감도 보였다. 파운드리 ‘다크호스’로 떠오른 라피더스가 2㎚ 시제품 출하에 힘입어 본격적인 해외 영업전에 나섰다는 평가가 따른다.
고이케 CEO는 26일(현지 시간) 미 스탠퍼드대에서 열린 국제 반도체 학회 ‘핫칩스 2025’ 둘째날 기조연설자로 나서 라피더스 파운드리 전략을 소개했다. 라피더스 CEO의 첫 해외 반도체 컨퍼런스 기조연설이다. 1999년 소니컴퓨터 이후 일본 기업의 첫 핫칩스 기조연설이기도 하다.
고이케 CEO는 TSMC와 삼성전자(005930) 등 경쟁사를 뚫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겠느냐는 청중의 질문에 “AI와 고성능컴퓨팅(HPC) 수요가 엄청나 초미세공정 반도체 제조 능력을 지닌 경쟁사가 모든 칩셋을 공급할 수 없다”며 “2027~2028년 시점에서 어떤 회사도 수요에 대응할 수 없기에 그 일부분에 기여하길 기대하고 있다”고 답했다.
라피더스는 2022년 도요타·키옥시아·소니·NTT 등 일본 대기업 8곳과 일본 정부가 합작해 설립한 파운드리다. 중간 단계 없이 2027년 2㎚ 양산에 돌입하겠다는 도전적 목표에 올 4월까지 일본 정부 자금 1조8000억 엔(약 17조 원)을 지원 받았으나 양산까지 5조 엔(약 47조 원)이 필요하다는 전망에 일본에서도 성공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지속 중이다.
이에 현 수주가 부진하더라도 목표한 대량 생산 시점에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폭증해 문제가 없다는 낙관적 예측을 내놓은 것이다. 그는 “(2027년 시점에) 5㎚ 생산이 가능한 파운드리는 많겠지만 2㎚를 양산할 수 있는 기업은 극히 한정적”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또 “양산 시점에는 ASML의 하이NA 극자외선(EUV) 장비도 확보할 것”이라며 “향후 1~2년 내 웨이퍼 기준 최대 월 5000장 생산능력을 갖추고 2027년에는 월 2만5000장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고이케 CEO의 기조연설은 설립 후 현재까지 라피더스의 성과를 정리하고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의구심을 해소하는 데 중점을 뒀다. 동일한 웨이퍼를 대량 생산하는 기존 파운드리와 달리 웨이퍼 한장한장을 맞춤 생산하는 ‘싱글웨이퍼’ 전략과 반도체 설계부터 납품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최대 15일로 단축시키겠다는 기존 전략도 재확인 했다. 7월 일본 홋카이도 지토세 팹에서 2㎚ 시제품 생산에 성공한 자신감을 발판으로 본격적인 글로벌 영업에 뛰어들겠다는 의도도 보였다. 다품종 소량생산과 빠른 납기로 TSMC·삼성전자·인텔의 초미세공정 파운드리 틈바구니 속에서 ‘틈새 시장’을 잡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양산 시기로 잡은 2027년 2㎚가 ‘구형’이 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TSMC와 삼성전자는 올해 말 2㎚ 양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인텔 또한 늦어도 2026년 상반기에는 18A(1.8㎚) 양산에 나선다. TSMC는 내년 말 1.6㎚ 생산을 준비 중이고, 삼성전자는 1.4㎚ 돌입 시점을 기존 2027년에서 2029년으로 늦췄으나 내년 3세대 2㎚(SF2P+)를 선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반도체 관세 정책도 걸림돌이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주요 선단공정 파운드리는 모두 미국 내 팹을 보유 중이나, 라피더스는 홋카이도의 첫 공장 건설이 이제 마무리 단계여서 미국 투자 여력이 없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AI 수요가 막대해 일부 수주를 확보할 수는 있겠으나 경쟁사 2㎚ 성숙공정과 관세 장벽을 제치고 수익을 낼 수 있느냐는 따져봐야 한다”면서도 “IBM·텐스토렌트 등 삼성전자 기존 고객사를 확보했고 일본 정부 국책사업이라는 점에서 향후 수주전의 ‘다크호스’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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