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조정 국면에 접어들면서 기업들이 전환사채(CB) 전환가액을 조정(리픽싱)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발행 당시 기대보다 주가가 부진하자 투자자 달래기용으로 전환가액을 낮추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외국계 헤지펀드들은 CB 매수와 함께 공매도 헤지 전략을 병행하며 한국 증시에서 쇼트 포지션을 확대하고 있어 자금 조달 여력이 낮은 코스닥 기업들을 중심으로 부담이 커지는 모습이다.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환가액의 조정’ 공시 건수는 지난달과 이달(22일 기준) 각각 66건, 46건으로 집계됐다. 코스피지수가 한창 급등하던 5월(56건)과 6월(54건)에 비해 전환가액을 조정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코스피가 지난달부터 주춤하면서, 주가가 발행 당시 기대보다 부진해진 기업들이 잇따라 리픽싱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리픽싱은 CB 투자자 입장에서는 전환 매력을 높이는 호재지만, 기존 주주들에게는 주식 수의 증가로 이어져 지분 희석 부담이 커지는 단점이 있다.
특히 자금 조달 여력이 약한 코스닥 기업들을 중심으로 이 같은 사례가 잦아지면서 자본 희석과 주가 하락(공매도 압박)의 이중고가 우려된다. 외국계 펀드들은 CB를 투자하면서 본 주식을 공매도하는 헤지 전략을 흔히 사용한다.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채권 투자로 손실을 방어하고, 동시에 공매도로 이익을 거둘 수 있어 주가 방향과 관계없이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CB 발행으로 어렵게 자금을 끌어온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자 달래기 카드로 동원된 리픽싱이 공매도 세력의 헤지 수단이 되고 있는 셈이다. 한울소재과학은 이달 11일 전환사채권 발행을 결정했다고 공시했는데 불과 사흘 뒤인 14일 공매도 거래액 비중이 평소 0%대에서 14%대로 급등했다. 알엔투테크놀로지도 12일 CB 발행 결정을 공시했다가 22일 공매도 거래 대금이 0%대에서 8%대로 증가했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정부와 정치권이 시장 활성화를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이를 역행하는 정책을 내놓으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개인투자자들에게 돌아가고 양방향 동시 베팅(헤지 전략)으로 리스크를 줄인 외국계 펀드들만 배를 불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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