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지수가 지난달 초부터 박스권 흐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공매도 순보유 잔고가 열흘 넘게 10조 원대 이상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수가 앞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데 베팅하고 있는 자금이 그만큼 많다는 뜻으로, 증권가에서는 당분간 국내 증시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호재가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공매도 순보유 잔고금액은 이달 20일 기준 10조 2890억 원으로 집계됐다. 직전 거래일인 19일 기준에는 10조 4060억 원으로, 올 3월 말 공매도가 전면 재개된 이후 최고치를 찍기도 했다.
공매도 순보유 잔고란 주식을 빌려 판 뒤 여전히 갚지 않고 보유 중인 물량을 말한다. 이 수치가 높을수록 여전히 해당 종목이 추가 하락할 것으로 보는 투자자가 많다는 의미다. 공매도 순보유 잔고금액은 지난달 30일 10조 원을 돌파한 뒤 이달 초 잠시 주춤하다가 이달 5일부터 20일까지 11거래일 연속 10조 원대에 머물러 있다. 전체 시가총액에서 공매도 순보유 잔고금액이 차지하는 비중도 이달 18~20일 3거래일 연속 0.4%에서 머물고 있는 모습이다.
대차거래잔고 금액도 이달(1∼21일) 들어 일평균 96조 1780억 원으로 집계돼 코스피가 가파른 상승세를 탔던 올 6월(88조 1000억 원) 대비 크게 늘어난 상태다. 대차거래잔고는 기관 투자자가 차입자에게 주식을 빌려주는 거래에 대한 잔고를 말한다. 기관들이 반드시 공매도만을 위해 주식을 빌리는 것은 아니지만, 대차 잔고가 늘어나면 공매도 압력 가능성도 커지는 경우가 많아 공매도 ‘선행 지표’로도 불린다.
지수 하락 전망이 우세해진 것은 미국의 금리 인하나 관세 여파 등 대외적 불확실성은 커진 반면, 이를 돌파할 마땅한 호재는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치 리스크가 해소되고 각종 증시 부양책에 대한 기대감으로 외국인 투자자들도 귀환해 올 6∼7월에는 강한 상승장이 연출됐다. 그러나 이달 초 세제 개편안에 대한 실망감에 연고점(7월 31일 장중 3288.26)을 찍었던 코스피는 단숨에 3100대로 주저앉은 뒤 박스권에 갇힌 상태다.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 등에 대한 정부의 입장 발표가 지연되면서 호재로서의 약발도 약해진 모습이다. 3분기 기업 실적도 코스피 상승 재료가 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박승영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고관세 정책이 3분기 실적부터 본격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외국인 매매 동향이나 정책 모멘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코스피는 에너지를 소진한 것 같고 올 7월 30일의 종가 3254포인트가 올해 고점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오는 25일 한미 정상회담, 28일 한국은행 통화정책방향회의(28일) 등 증시에 변수가 될만한 주요 이벤트가 산적한 점도 관망세를 키우고 있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은 “특히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방위비 분담 증대를 요구할 가능성이 큰데, 방위비 인상 요구와 수준에 따라 한국의 재정 부담이 커지면 금리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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