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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채권단 관리때도 안 팔아…亞기업 첫 체코증시 입성

[다시, KOREA 미러클]

◆해외에서 뿌리내린 기업들 <4> 체코서 부활한 두산에너빌

16년전 6600억에 스코다파워 품어

증기터빈 이어 가스터빈까지 제조

SMR 발전기도 수년 내 자체 생산

글로벌 원전 파운드리 지위 공고화

증시입성 6개월만에 주가 40% 쑥

7월 25일(현지 시간) 방문한 체코 플젠시 두산스코다파워 공장에서 증기터빈에 들어가는 로터(회전축)가 작업대에 올려져 있다. 유민환 기자




두산스코다파워 공장은 체코 수도 프라하에서 서쪽으로 약 90㎞ 떨어진 플젠시에 위치하고 있다. 지난달 25일(현지 시간) 찾은 플젠시는 체코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지만 인구가 18만 명밖에 되지 않아 한적한 전원도시의 분위기를 풍겼다.



작은 마을에 펼쳐진 공장은 축구장 약 5개(3만 3000㎡) 크기였다. 공장에 들어서자 ‘DOOSAN(두산)’이 적힌 작업복을 입은 현지 직원들이 육중한 기계 사이로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공장 관계자는 “현재 여름휴가 기간이지만 일감이 많이 쌓여 직원들이 휴가를 미루고 생산 현장에 나와 있다”고 말했다.

작업자들은 블레이드(날개)와 로터(회전축)·밸브·케이스·나사 등 라인별로 부품을 가공한 뒤 증기터빈을 최종 조립하는 방식으로 일을 했다. 증기터빈의 크기는 출력 용량에 따라 달랐지만 로터를 기준으로 큰 것은 길이 8.5m, 직경 1.2m에 달하고 무게도 34톤에 이르렀다.

7월 25일(현지 시간) 방문한 체코 플젠시 두산스코다파워 공장에서 두산 작업복을 입은 한 작업자가 증기터빈의 케이스를 점검하고 있다. 유민환 기자


압축된 증기를 받아들여 로터를 돌리는 블레이드 제작은 핵심 생산공정 중 하나였다. 작업자들은 가공 머시닝센터를 통해 정밀하게 깎인 블레이드의 마모 정도와 깨짐 여부를 검수하고 있었다. 부품 가공은 주로 기계가 하지만 최종 작업에는 사람의 손과 눈이 필요했다.

블레이드와 로터의 결합은 용접으로 붙이는 것이 아니라 연결 부분을 암수로 만들고 공간을 조정해 끼우는 정교한 작업이었다. 임영기 두산스코다파워 법인장(CEO)은 “금속은 열을 받으면 팽창하기 때문에 그 공간까지 고려하는 ㎜ 단위의 세밀한 조정이 필수”라며 “설계도만 있다고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 축적된 경험과 기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증기터빈은 발전소에서 생성된 고온·고압 증기로 내부 회전 날개를 돌려 기계적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전력 핵심 장치로 잘 알려져 있다. 블레이드를 단 로터는 터빈 내부에서 초당 50~60번, 시간으로 따지면 18만~21만 5000번 회전한다. 중간중간 오버홀(분해 점검·수리)을 통해 부품을 대체하지만 사용 기한은 무려 15년에 달한다. 작은 오차에도 회전축 균형이 깨져 고장과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엄청난 정확도와 내구성이 요구된다. 이 큰 공장에서 연간 겨우 20기 정도의 증기터빈을 생산하는 이유다. 정상인 두산스코다파워 서비스디렉터는 “체코는 과거부터 세계적으로 유리 공예가 뛰어났다”면서 “공장 직원들의 손 기술도 대단한 수준”이라고 했다.

체코 플젠에 위치한 두산스코다파워 공장에서 직원이 증기터빈을 살펴보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 제공




두산에너빌리티(034020)(당시 두산중공업)는 2009년 6600억 원을 투자해 스코다파워 지분 100%를 인수했다. 스코다그룹은 1859년 만들어진 체코 국민 기업으로 창업자인 에밀 스코다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에 버금가는 인물이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 체코(당시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에 의해 국유화된 뒤 실적이 악화됐고 1990년대 그룹 해체 및 민영화의 길을 걸었다. 이때 두산은 10년 넘게 스코다파워와 맺은 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별다른 국민적 반대 없이 체코 정부로부터 인수를 승인받았다.

두산에너빌리티와 스코다파워는 서로에 날개를 달아줬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스코다파워의 증기터빈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기존보다 용량이 큰 증기터빈을 만들었고, 증기터빈보다 더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가스터빈까지 생산하는 데 이르렀다. 스코다파워는 두산의 영업망을 통해 전 세계 수출이 가능해지면서 매출과 이익이 쑥쑥 커나갔다. 임 법인장은 “인수 전에는 매출의 90%가 동유럽에서 나왔는데 인수 후에는 80% 이상이 동유럽 이외 지역에서 발생한다”고 말했다.

7월 25일(현지 시간) 방문한 체코 플젠시 두산스코다파워 공장 입구에 태극기와 체코 국기, 두산 깃발이 나란히 꽂혀 있다. 유민환 기자


두산그룹은 2020년 12조 원에 육박한 차입금 탓에 채권단 관리 체제에 들어갔다. 당시 자금 마련을 위해 핵심 계열사인 두산인프라코어(현 HD현대인프라코어)와 두산솔루스(현 솔루스첨단소재)를 팔았지만 두산스코다파워는 매각하지 않았다. 글로벌 원전 시장 부활을 예상하고 대비한 것이다.

결국 두산스코다파워는 5월 한국수력원자력을 중심으로 한 ‘팀코리아’가 26조 원 규모의 체코 두코바니 5·6호기 원전을 최종 수주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회사는 체코에서 이미 가동 중인 원전 6기 모두에 증기 터빈을 공급하고, 독일과 핀란드 등까지 포함하면 총 26기의 터빈을 유럽 원전에 납품한 바 있다. 체코는 자국 기업이던 두산스코다파워가 새 원전에도 증기터빈을 공급해주기를 바랐고, 회사를 인수해 15년간 성장시킨 두산과 한국에 신뢰를 보였다.

특히 체코 정부가 요구한 현지화율은 팀코리아에 안성맞춤이었다. 체코는 원전 건설과 추후 운영 과정에 현지화율 60%를 요구했는데, 한국은 두산스코다파워만으로 이미 현지화율 20%를 달성하는 효과가 있었다.

체코 플젠에 위치한 두산스코다파워 공장에서 직원이 증기터빈을 살펴보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 제공


두산스코다파워는 체코 신원전에 증기터빈과 발전기를 만들어 공급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이를 위해 발전기 생산 기술을 두산스코다파워에 이전할 계획이다. 기술이전 완료 시 현지화율이 30%로 올라가고 두산스코다파워는 2029년부터 소형모듈원전(SMR), 복합 화력 등 다양한 발전소용 발전기를 자체 생산할 수 있게 돼 원전 사업 수행 능력이 한층 높아진다.

두산스코다파워는 올 2월 체코 증시에 상장하는 데 성공했다. 체코 증시에 발전 기자재 기업이 상장한 것도, 아시아 기업이 상장한 것도 처음이다. 상장 당시 주당 240코루나 수준이던 주가는 현재 340코루나로 40%가량 올랐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증기터빈을 비롯해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등 원전 3대 핵심 주 기기를 모두 만들어내면서 글로벌 원전 파운드리(위탁 생산)로서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 현재까지 원자로 34대, 증기발생기 124대를 제작 납품했다. SMR을 중심으로 한 신사업의 글로벌 수주에도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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