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제품에 하자가 있으면 AS를 받지만 하자가 없는 금융 상품에 손실이 났다고 배상하라는 게 맞나요?”
최근 만난 한 증권사의 대표는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라는 명목 아래 추진되는 금융 감독 체계 개편을 지적했다. 손실도, 수익도 가능한 ‘투자’ 상품을 마치 하자가 있으면 AS가 되는 가전제품처럼 다루는 시선 때문에 무조건 책임지라는 고객이 늘어날까 걱정하는 것이다. 금융회사만의 ‘기우’일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논의를 보면 실제 현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금융회사들이 우려하는 이유는 개편의 방향보다 과정 때문이다. 정부는 금융감독원 내 금융소비처를 분리해 독립 기구로 세우려 한다. 하지만 정작 감독·제재 대상인 금융권은 이번 논의에서 사실상 완전히 배제됐다. 심지어 금감원 내부 의견조차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채 급하게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방안대로면 오히려 소비자 보호 정책의 실효성과 전문성을 잃을 수 있다. 지금은 금감원 직원들이 검사·감독 부서와 상품 심사 부서를 순환 근무하지만 조직이 갈라지면 검사, 감독, 상품 심사를 모두 경험한 직원은 없어진다. 분쟁 조정 과정에서 검사와 감독권으로 소비자를 대신해 금융회사의 잘못을 가려내는 기능은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결국 금소원은 금융사가 자신들의 입장에서 제출한 자료에만 의존해야 한다.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제도는 소비자 보호 목적을 벗어나 시장 자체를 고사시키기도 한다. 금소법 시행 이후 상품 설명 의무가 강화됐지만 가입 절차만 복잡해졌을 뿐 소비자의 상품 이해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다. 판매 창구에서 수십 분 이상 걸리는 설명에 지친 소비자들은 공모펀드를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금융소비자 중심주의가 엉뚱하게 해석돼 투자자 스스로 해야 할 기본적인 상품 이해나 판단을 하지 않는 경향도 늘었다. 이는 건전한 시장 발전을 저해한다. 소비자 보호는 중요하지만 그 과정이 일방적이면 부작용만 늘어난다. 업계의 기우가 현실이 되지 않으려면 제도의 설계 단계에서부터 일반 상품과 다른 금융 상품의 특징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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