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메모리반도체를 대표하는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가 고대역폭메모리(HBM)에 이어 차세대 D램 모듈 규격인 소캠(SOCAMM) 시장 선점을 위한 양산 경쟁에 돌입했다. 인공지능(AI) 칩 세계 1위인 엔비디아가 독자 표준으로 채택해 ‘제2의 HBM’으로 떠오른 이 시장에서 초기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미국 마이크론이 소캠 시장에서 선두 주자를 표방하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나란히 연내 양산을 공식화해 판도 변화가 주목된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메모리반도체 업체는 2분기 실적 발표 후 차세대 제품 중 하나로 소캠을 부각시키며 양산 계획을 제시했다. 삼성전자는 9월까지 소캠의 양산과 출하를 예정하고 있다고 했고 SK하이닉스도 서버용 LPDDR 기반 소캠 모듈에 대해 연내 공급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소캠은 엔비디아가 AI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차지하고자 독자적으로 표준을 추진 중인 LPDDR D램 기반의 탈부착식 D램 모듈이다. DDR 기반의 서버용 모듈 대신 저전력이 장점인 LPDDR5X D램을 얹기 때문에 전력 소모를 기존 대비 3분의 1 수준까지 줄일 수 있다. 기존 노트북용 D램 모듈(LPCAMM) 대비 데이터 이동통로(I/O)를 늘려 AI 성능 구현에도 적합하다.
양 사가 모두 소캠 양산 계획을 공식화한 건 소캠 공급망에 조기 진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엔비디아는 메모리 3사와 모두 협력해 소캠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 마이크론이 3월 미국에서 열린 엔비디아 주최 AI 콘퍼런스 ‘GTC 2025’에서 “소캠을 대량 양산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선두 주자로 떠오른 반면 국내 업체들의 양산 시기는 내년으로 밀리는 것 아니냐는 업계의 우려가 있었는데 이를 불식한 것이다. 송명섭 IM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으로 출시가 연기될 것으로 우려됐던 소캠 메모리는 삼성·SK 모두 4분기 출하를 시작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HBM 시장이 급성장하자 메모리 업체들은 엔비디아 공급망을 초기 선점하려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차세대 AI 제품군의 시장 증가 속도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기 때문에 조기에 대응하지 않으면 성장세에 올라타기 어려워서다. 실제 HBM을 엔비디아에 가장 먼저 공급한 SK하이닉스는 현재까지 사실상 독점적 공급 지위를 지키며 최대 실적을 매 분기 경신하고 있다.
소캠 시장의 본격적인 개화 시점은 내년으로 전망된다. 엔비디아는 소캠을 개인용 AI 슈퍼컴퓨터인 ‘프로젝트 디지츠’와 내년 하반기 출시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 루빈으로 만드는 서버에 채용할 계획이다. 엔비디아의 올해 소캠 도입 물량은 최대 80만 장 수준으로 알려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엔비디아가 소캠 개발을 시작한 건 AI 반도체 표준을 장악하고자 하는 의도”라며 “처음에는 엔비디아 제품 위주로 시장이 형성되겠지만 유사한 제품이 업계에 통용되는 표준으로 자리 잡으면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존 HBM과는 경쟁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소캠 기반인 LPDDR 제품군에서 오랜 기간 1위를 지켜왔고 올 6월 차세대 제품인 소캠2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기존 DDR 기반 서버용 모듈 RDIMM 대비 소비 전력을 50% 줄인 것이 특징이다. SK하이닉스의 경우 HBM 수요 증가로 생산능력이 제한적인 반면 삼성전자는 메모리 3사 중 가장 많은 생산시설을 거느리고 있어 물량 확보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주대영 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연구위원은 “엔비디아가 공급사 다변화 차원에서 1차적으로 HBM은 SK하이닉스, 소캠은 마이크론이라는 구도를 정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HBM 시장에서도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이 진입하며 경쟁이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에 소캠의 두 번째 공급사가 어디인지에 따라 AI 반도체 경쟁 구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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