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373220)이 중국 업체들이 강세를 보이는 미국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시장에서 6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공급계약을 따내며 반격에 나서고 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돌파를 위해 일찍이 미국에서 에너지저장장치(ESS)용 LFP 배터리 생산체제를 구축하는 등 민첩한 사업 전략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은 중국산 배터리를 배제하는 미국의 정책을 기회로 삼아 현지 생산능력과 점유율을 동시에 끌어올릴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총 5조 9442억 원 규모의 LFP 배터리 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30일 공시했다. ESS 분야에서 단일 계약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로 지난해 매출(25조 6000억 원)의 23.2%에 달하는 초대형 공급 계약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고객사를 대상으로 2027년 8월부터 2030년 7월 말까지 3년간 LFP 배터리를 공급하고 추후 협의를 거쳐 기간을 4년 더 연장할 수 있다. 협의에 따라 수주 금액은 현재보다 더 늘어날 수도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고객사와 공급 규모 등 구체적인 내용은 ‘경영상 비밀 유지’를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업계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테슬라에 ESS용 LFP 배터리를 공급할 것으로 보고 있다. 테슬라는 전기차 생산과 함께 ESS 사업도 벌이고 있는데 올 4월 열린 1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LFP 배터리 수급과 관련해 “미국 관세 등에 따라 중국이 아닌 미국 내 기업으로 공급처를 찾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로이터통신도 이날 소식통을 인용해 “LG에너지솔루션이 테슬라의 ESS에 사용될 LFP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핵심 고객사인 테슬라를 상대로 LFP 배터리 공급계약을 따내며 협력 범위가 넓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LG에너지솔루션 등 국내 업체는 지금까지 높은 에너지 밀도를 갖춘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에 주력해왔고 저렴한 LFP 배터리 시장은 저가를 앞세운 중국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LG에너지솔루션이 CATL 등 중국 업체를 누르고 대규모 수주에 성공하면서 ESS 배터리 시장의 판도가 바뀌는 상황이다.
이번 계약은 LG에너지솔루션의 빠른 경영 판단이 이뤄낸 성과다. LG에너지솔루션은 ESS 시장에서 커지는 저가형 LFP 수요를 포착하고 북미 지역에 LFP 배터리 생산 거점을 미리 마련했다. 올해 5월 가동을 시작한 미국 미시간주 홀랜드2공장이 대표적이다. 기존 공장인 홀랜드2공장의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라인 중 일부를 LFP 배터리 라인으로 전환해 양산 개시 시점을 당초 계획 대비 1년가량 앞당겼다. 북미에서 LFP 배터리 생산 공장을 보유한 배터리 제조사는 LG에너지솔루션이 유일하다.
LG에너지솔루션의 현지 생산 역량은 수주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 정부의 고율 관세 부과를 피할 수 있는 데다 물류 측면에서 이점도 크기 때문이다. ESS용 배터리를 미국 외 다른 지역에서 들여오려면 막대한 해상 및 육상 운송비를 부담해야 하는 반면 현지 생산된 제품은 육로를 통한 물류 이동으로 비용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다.
LFP 배터리 시장에서 두각을 보이는 LG에너지솔루션이 ‘탈중국’을 내건 미국 공급망 정책의 혜택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근 미국 의회를 통과한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BA)’으로 중국산 배터리는 사실상 퇴출 수순을 밟게 된다는 점에서 현지 생산된 배터리에 대한 시장 선호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고성장 중인 ESS 시장을 고려해 현지 생산능력을 더욱 확대하고 수주 역량을 강화할 계획이다. 홀랜드2공장의 생산 확대를 시작으로 연말까지 17GWh, 내년 말까지 30GWh 이상의 현지 생산능력을 구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북미 ESS 시장은 인공지능(AI) 발전과 데이터센터 확산 등에 따른 전력 수요의 증가로 연평균 2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2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현재 신규 폼팩터를 포함해 ESS향으로 다양한 LFP 제품 공급을 논의 중이며 다수의 대규모 전력망 프로젝트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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