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협상이 타결된 2007년 4월 전국 각지에서는 “농축산업은 망했다”는 외침이 들끓었다. 소와 염소가 청와대 앞 시위에 등장했고 제주에서는 감귤 나무가 불탔다. 농사용 트랙터·경운기에는 ‘한미 FTA 저지’가 적힌 플랜카드가 붙었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오늘날 국내 농축산업은 한미 FTA 때문에 쇠퇴했을까. 올해 3월 말 기준 한우 사육 마릿수는 335만 마리로 한미 FTA 발효 직전인 2011년 말보다 되레 12% 늘었다. 미국산 오렌지 수입으로 전멸할 것이라던 감귤 재배 면적은 2011~2023년 1.9% 확대됐다.
국내 농축산업의 저성장은 오히려 고령화와 기후위기, 더딘 혁신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소비자가격에서 유통이 차지하는 비중인 농축산물 유통비용률은 2011년 41.8%에서 2023년 49.2%로 상승했다. 쌀·쇠고기·사과 등 개별 품목 41개 중 25개의 유통비용률이 올랐다. 태평양을 건너 온 미국산보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온 국내산이 더 비싼 현상도 놀랍지 않다.
이에 소비자들은 합리적 소비로 돌아서는 추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올해 발표한 ‘2024 식품소비행태 기초분석 보고서’를 살펴보면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를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가구는 56.7%에 달했다. 한미 FTA 발효 다음 해인 2013년보다 31.1%포인트나 증가했다. ‘수입 쌀 취식 의향이 있다’고 답한 비중도 18.1%로 2013년보다 4배 넘게 늘었다. 고물가에 소비자들이 장바구니 가격을 제일 중요한 기준으로 삼게 된 결과다.
취재 현장에서도 이를 둘러싼 우려들이 들려온다. 한미 관세 협상 시 시장 개방 확대에 따른 피해보다 농축산물이 늘 고물가의 주범으로 몰리고 혁신과 변화에 소극적인 산업으로 고착화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크다. 위기를 극복한 성장은 있어도 혁신 없는 성장은 없다는 것이다. 2007년 3월 농·어업인 대상 업무보고에서 “농산물도 상품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안 된다. 한미 FTA를 통해 농업 구조조정을 1차로 하자”고 했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외침을 다시 한 번 되새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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