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정부 조직 개편 과정과 성과를 분석한 결과 행정조직을 바꾸는 일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국회 입법조사처의 지적이 나왔다. 이재명 정부가 현 기획재정부의 예산 기능을 떼내고 금융 산업 정책을 분리하는 등의 개편 작업을 추진하는 가운데 나온 제언이다. 전문가들 역시 미국과의 관세 협상과 가계부채, 부동산 대책 등 현안이 쌓인 상황에서 섣부른 조직 개편에 나서기보다는 지금의 체제에서 운용의 묘를 살리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본지 7월 11일자 1·10면 참조
16일 금융계와 정부 부처에 따르면 국회 입법처는 최근 발간한 ‘역대 정부 조직 개편의 현황과 최근 개편 논의’라는 이름의 보고서에서 “역대 정부의 경험은 정치적인 목적에서 반복적으로 단행되는 조직 개편이 공공 부문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예기치 않은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입법처는 바람직한 정부 조직 개편을 위해 △행정조직법에 부합하는 기관 신설과 부처 간 사무 배분 △효과적인 업무 통제 및 조정 방안 △도구적 차원에서 조직 개편 접근 △국민에게 향상된 공공 서비스 제공 목적 등을 충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입법처는 “행정 개혁 또는 정부 혁신의 목표를 명확히 설정한 후 도구적인 차원에서 정부 조직 개편을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조직 개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더 나은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정 개혁 측면이 강조돼야 한다는 뜻이다. 조직 개편 결과 이에 영향을 받는 국민들과 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금융 감독 체계 개편 논의만 봐도 금융 산업과 감독을 분리하고 금융소비자보호원을 독립시키면 금융사들은 많게는 4개 부처를 찾아다녀야 한다. 지금은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과만 의사소통을 하면 됐지만 앞으로는 금융 산업을 담당하는 재정경제부(가칭)와 금융감독위원회·금융감독원·금소원까지 협의를 해야 하는 셈이다. 특히 현재 금융 감독 체계 개편의 경우 기재부에서 예산을 분리한 뒤 남는 조직에 어느 정도 힘을 실어준다는 의미에서 검토되는 측면도 있어 효율적이지 않다는 얘기도 있다. 입법처는 “정부 조직을 개편하는 그 자체는 목적이 아닌 수단”이라며 행정 환경 변화 대응을 위한 정부 조직 개편의 필요성을 인정할지라도 행정조직을 개편하는 일에는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면서 “정권 교체기의 정부 조직 개편 논의는 매우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정치적 진통을 야기할 수 있는 데다 공직 사회의 혼란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후에너지부 신설과 그에 따른 에너지 부문 이관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AI) 같은 신산업을 위해서는 대규모 전력이 필수이고 이를 위해서는 산업과 에너지가 지금처럼 한 부처에 있는 게 효율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에너지를 따로 떼내 기후와 환경 측면에서 접근하다 보면 산업 경쟁력의 핵심인 전력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게 관가의 시각이다. 입법처는 “정권 초 광범위한 규모로 조직 개편을 단행하기보다는 행정 개혁의 목표를 설정한 후 우선순위에 따라 점진적으로 개편하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