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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몸에 맞지 않는 옷, 획일적 근로제도

송병준 벤처기업협회장

송병준 벤처기업협회장




대한민국 벤처기업은 자율성과 유연성을 바탕으로 한 개개인의 창의성을 무기로 지속적인 혁신을 이루며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정부는 인공지능(AI)을 국가 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100조 원 규모의 투자 발표와 AI미래기획수석 신설 등 AI 기술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행보는 ‘국가의 운명이 걸려 있다’는 절박함을 느끼게 한다.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자본과 전략뿐만 아니라 이를 실현할 유연한 근로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시간이 경쟁력인 이 시대에는 ‘집중의 시간’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획일적인 주52시간제도에 얽매여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고정된 틀의 근로시간제도를 고수한다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최근 정부에서 논의 중인 주4.5일제는 근로자의 일·생활 균형을 위한 긍정적인 논의로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개별 기업의 특성과 자율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접근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



벤처기업은 민첩한 프로젝트 중심의 구조, 기술 개발에 대한 집중, 투자 대응 등으로 집중 근무가 불가피한 경우가 많다. 노동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현재의 주52시간제는 생산성 저하, 인력 문제, 비용 상승 등 기업 성장에 많은 걸림돌로 작용한다. 올해 5월 벤처기업협회가 실시한 ‘벤처기업의 주52시간제도 운영 실태 및 애로 조사’ 결과는 현장의 어려움을 수치로 명확하게 보여준다. 응답 기업의 80%가 “연구개발(R&D) 및 핵심 인력의 집중 근무가 가능한 근로시간 유연화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이는 R&D와 사업 모델 개발이 필수인 벤처기업 전반에서 집중적 몰입이 시급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적어도 벤처기업의 핵심인 R&D 인력만이라도 근로시간의 유연성 확보가 시급히 필요하다. 특히 업무량이 특정 시기에 집중되는 벤처기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근로시간을 주 단위가 아니라 분기 또는 연 단위로 관리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총 근로시간 안에서 집중 근무와 여유 시기를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면 기업의 생산성과 근로자의 만족도를 동시에 높일 수 있다. 실제로 협회 조사에서도 응답 기업의 68.7%가 이 제도가 “필요하다”고 응답하면서 “계절별·과업별로 집중 근무와 여유 시기가 명확히 나뉘며 그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특히 기술 개발과 연구를 주도하는 핵심 인력에 대해서는 보다 유연한 근로시간 적용을 위해 ‘화이트칼라 예외 조항’과 같은 근로시간 예외 규정이 필요하다. 노사 합의에 의해 일정 요건을 충족한 인력에 대해 자율적인 근로시간 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예외를 마련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과 보호 장치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이는 단지 개별 기업의 성과를 위한 것이 아니라 AI 등 핵심 분야의 국가 경쟁력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한국 특유의 벤처기업 문화가 사라졌다는 게 국내 벤처기업에 많은 투자를 해왔던 어느 해외 투자자의 탄식이다. 기업은 내부 직원의 성과를 독려하기보다 근로기준법을 위반할까 두려워 점검에 골몰하고 대기업 취업을 마다하고 창의력과 기술로 인생을 걸기 위해 뛰어든 근로자가 더 일하고 싶어도 못하게 하는 조직 문화가 과연 주52시간제 의무화를 설계했던 취지일까. 이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정책은 없다. 시행된 제도의 부작용이 발견된다면 지체 없이 이를 보완해야 한다.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는 분야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정부는 산업 현장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기업의 특수성과 자율성을 포용하며 창의적인 업무 방식이 실현될 수 있도록 근로제도를 탄력적으로 개편해 나가야 한다. 근로시간제도의 유연화를 통해 벤처기업에 ‘집중의 시간’을 부여하고 산업 전반의 혁신을 촉진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이 AI 3대 강국을 넘어 글로벌 경제 강국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끌어나가는 길이다. 지금이 아니면 또 후회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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