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성 희귀질환으로 죽음의 문턱에 놓였던 필리핀 청년이 한국 의료진의 도움으로 어머니의 간을 이식 받고 새 삶을 얻었다.
15일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이 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의 김기훈·안철수·김상훈 교수가 이끄는 간이식 팀은 지난달 18일 필리핀 마카티병원에서 원발성 경화성 담관염을 앓는 프란츠 아렌 바바오 레예즈(23·남) 씨에게 어머니의 간 일부를 떼어내 이식하는 생체 간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시행했다.
경화성 담관염은 간에서 소장으로 답증을 이동시키는 통로인 담관의 만성적인 염증으로 담관 벽이 두꺼워져 좁아지거나 협착이 생기는 희귀한 질환이다. 바바오 레예즈 씨는 4년 전부터 반복적으로 담도염을 앓아왔고 만성적인 담관의 염증으로 간기능이 저하돼 전신 상태가 나빠진 상태였다. 최근에는 패혈증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할 정도로 상태가 급격히 악화했다.
기증자인 어머니 마리아 로레나 멘도자 바바오(50) 씨의 경우 과거 복부 총상으로 인한 장천공으로 세 차례나 복부 수술을 받은 이력이 있어 복강 내 심한 유착이 우려되는 터라 여러모로 위험 부담이 컸다. 김기훈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교수는 현지 의료진과 함께 어머니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복강경 수술 대신 개복 간절제술로 간 일부를 무사히 절제해냈다. 어머니는 수술 후 안정적인 경과를 보이며 수술 5일 만에 퇴원했고 아들인 바바오 레예즈 씨 역시 건강하게 회복되어 이번 주 퇴원할 예정이다.
바바오 레예즈 씨는 “상태가 점점 악화되는 상황에서 간이식 분야에서 세계 최고인 병원에서 수술을 집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으로 희망이 생겼다”며 “멀리서 찾아와 저에게 새 생명을 선사한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전했다.
이번 수술은 마카티병원 개원 56년 만에 처음 이뤄진 생체 간이식 수술이었다. 아산병원에 따르면 필리핀은 장기 기증자 수가 인구 100만 명당 1명 수준으로 정체돼 있어, 간이식 수술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간이식 생존율도 국제적인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마카티병원으로부터 이러한 상황과 함께 협력을 요청 받은 아산병원은 2023년 현지 의료진 9명을 초청해 간이식 연수를 지원했다. 지난해 10월에는 김기훈 간이식·간담도외과 교수가 현지 세미나에서 직접 강연허묘 간이식 및 간담도 분야의 노하우를 전수한 바 있다.
김기훈 교수는 “이번 수술은 현지 의료진이 독자적으로 간이식을 시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마카티병원에 간이식 시스템이 잘 정착될 수 있게 교육과 장비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이 현재까지 시행한 생체 간이식 건수는 7563례에 달한다. 지난 5월에는 뇌사자 간이식을 포함해 간이식 9000례를 달성해 단일 의료기관 기준 세계 최다 간이식 기록을 세웠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