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대표들이 14일 국회에서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을 만나 간담회를 열고 의료현장 복귀를 논의했다.
한성존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중증·핵심의료 재건을 위한 간담회’ 모두발언에서 “지난 1년 4개월 무자비한 폭격이 니자 주변을 둘러보니 자랑스럽게 생각한 한국 의료가 무너지기 직전”이라며 “잘잘못 따지기를 넘어 이 자리에서 살아야 할 미래 세대로서 중증·핵심의료를 재건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그간의 사태로 환자와 보호자가 겪었을 불안함에 마음이 무겁다”며 “이 자리에서 의료계의 모든 문제를 다룰 수는 없지만 복귀와 함께 의료 재건의 중요한 초석을 다지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전협은 발제를 통해 전공의들의 복귀를 위해 사법리스크 해소와 수련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대전협은 이날 간담회 결과를 바탕으로 19일 총회를 열어 대정부 요구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은 “무엇보다 중요한 게 신뢰 회복”이라며 “전공의들이 조속히 복귀할 수 있도록 기반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 의원은 사태 해결이 소통에 달렸다며 “모두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한마음으로 복귀하겠다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당부했다.
이처럼 정치권을 중심으로 의정 간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있지만 사직한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으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더미같다. 군 문제 해결부터 의료사고 법적 부담 완화, 수련환경 개선 등 쉬운 의제가 하나도 없다. 해법을 낸다 해도 이미 사직 전공의 중 재취업한 이들도 적잖아 수련병원으로 복귀를 장담할 수 없기에 의료현장 정상화에 얼마나 보탬이 될지 미지수다. 특히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의 경우 섣부른 조정이 수련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품질 높은 수련으로 실력있는 의사를 배출해 국민건강을 보호한다는 대전제를 지키면서도 기존 수련 프로그램을 개선하는 ‘묘수’가 필요하다.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사직 전공의들이 수련병원 복귀를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는 것은 입영·입영대기 상태인 전공의에 대한 수련 연속성 보장이다. 입영대기 중인 전공의가 복귀했을 때 수련 완료 전까지는 입대를 연기하고, 이미 입대한 전공의들도 전역 후 기존 수련병원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현재 입영대기 상태에 있는 사직 전공의는 약 2400여명으로 추산된다. 현행 규정상 한 번 사직한 전공의들은 의무사관후보생으로 편입돼 별도 조치가 없으면 복귀한다 해도 수련 도중에 군입대를 해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대상자 한꺼번에 모두 입영을 연기해주면 군 의료 시스템에 공백이 발생하기 때문에 점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필수의료 분야 전공의들은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해 법적 부담을 완화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달 7일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정부 지정 필수과목(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신경과·신경외과·응급의학과·심장혈관흉부외과) 전공의 중 “수련 재개 의사가 없다”는 응답이 72.1%에 달했다. 이는 의료사고안전망 문제와 연관돼 있다. 정부도 이같은 의료계 요구를 반영해 올 초 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에서 의료사고안전망 강화 방안을 공개했다. 하지만 정부안에 환자·시민사회단체 반발이 거센 만큼 여러 이해당사자의 목소리를 수렴해야 한다는 점에서 시간이 필요하다.
전공의들의 수련환경 개선 문제도 첨예한 대립 사안이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공의들의 요구를 반영해 주당 근무시간을 현행 80시간에서 60시간으로, 연속근무시간을 30시간에서 24시간으로 축소하는 전공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부 역시 올해 시범사업을 통해 주당 근무시간을 72시간으로, 연속근무시간은 24시간으로 조정했다. 이에 대해 의료계에서는 주당 근무시간이 줄어든 시간 만큼 전체 수련기간을 늘려 수련의 품질을 유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의사로서 배워야 할 것들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은 존재한다”고 말했다. 다만 집중 근무시간을 줄이는 대신 기존 3~4년의 수련기간을 5~6년 가량으로 늘리는 방안을 전공의들이 받아들일 지는 미지수다.
1년 5개월 동안 ‘전공의 공백’을 메워왔던 전문의와 진료지원(PA) 간호사들과의 공존도 풀어야 할 문제다. 5월 추가모집 당시 복귀한 한 필수과 전공의는 “돌아와 보니 당직 전문의, PA 간호사 등이 공백을 메우고 있었고, 환자들의 만족도도 높았다”며 “전공의 없이도 그럭저럭 돌아가는 상황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전문의 시험을 추가로 열어달라는 요구도 나타날 공산이 크다. 현행 규정상 수련 공백이 3개월을 넘기면 전문의 시험 응시 자격이 제한되기 때문에 레지던트 3~4년차는 9월 복귀해도 내년 2월 전문의 자격시험을 치르기 어렵다. 하지만 진료과별 전문의 시험에 정부 예산이 연간 36억 원 들어가는 점은 부담스러운 지점이다.
특히 각종 문제 해결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여론의 흐름도 중요한 문제다. 각 쟁점들이 어떻게 해결되느냐에 따라 특혜로 비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당장 시민단체, 환자단체들의 시선이 싸늘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갈등 봉합을 위해 정부가 다시 선처한다면 반복되는 의료계의 이기적 집단행동을 막을 수 없고 매번 그 피해는 국민과 환자의 몫이 된다”고 지적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이날 서울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공의에 대한 특혜성 조치는 정의와 상식에 반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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