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이달 중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회의에 사상 처음으로 장·차관이 아닌 차관보를 대표로 파견하기로 한 것으로 파악됐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이 불참하는 데다, 구윤철 기재부장관 후보자의 청문회 일정 등을 감안할 때 기재부 장관 직무대행까지 일주일간 국내를 비우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다.
3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기재부는 오는 7월 17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G20재무장관회의에 이형일 기획재정부 장관 직무대행 1차관 대신에 최지영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이 참석하는 것을 사실상 확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2008년 통합 기재부 출범 이후 기재부는 G20재무회의에 장관이 참석해왔고 지난 2월 회의 때만 대통령 탄핵 사태로 김범석 기재부 1차관이 대신 참석했다. 하지만 이번 7월 회의에는 차관마저 참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선 구윤철 기재부 장관 후보자는 대통령 임명 전에는 장관 신분이 아니라서 국제회의 참석이 불가능하다. 기재부 관계자는 “청문회 일정 등을 감안할 때 (남아공) 회의 참석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이형일 직무대행이 남아공행을 위해 일주일간 국내를 비울 경우 국내 경제정책 수장이 공식적으로 없는 공백 사태가 생기게 된다. 이 대행의 불참 결정에는 이같은 국내 정책 대응 공백에 대한 우려가 직접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윤철 장관 후보자가 청문회 준비에 전념해야 하는 시점에 장관 직무대행까지 자리를 비우게 되면 기재부의 현안 대응이 마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7월은 이재명 정부의 첫 추가경정예산이 집행되는 시기인 만큼 민생 소비쿠폰 지급 등 경기부양 사업의 집행 점검에 나서야 한다. 거기에다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과 세제개편안 발표 등 중요 일정이 이달에 줄줄이 몰려 있다. 이에 따라 기재부장관 직무대행 참석 대신 최지영 국제차관보가 대표로 참석하는 방향으로 내부 결론이 모아졌고 다음주쯤 주최국에 이를 공식 통보할 예정이다. 이는 이재명 정부가 회의 참석 자체보다 실질적 양자 협의를 우선시하는 실용주의 외교 기조가 반영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 대행이 국내 일정이 많아 지금도 야근을 많이 하는데 남아공 가기 위해 일주일 비우는건 어렵다"며 "부동산이나 물가 대응과 같은 국내 현안대응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이형일 직무대행이 불참하기로 한 또 다른 배경으로는 미국 대표단의 회의 불참 가능성이 꼽힌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다자무대에 대한 미국의 외교적 관심이 크게 줄었고 그 여파로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지난 2월 G20재무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지난 2월 남아공에서 개최된 G20 재무장관 회의 당시 의장국 남아공 재무장관이 낸 총괄성명에 "보호주의에 대한 저항을 재확인했다"고 명시하며 미국의 고관세 정책을 사실상 겨냥했다. 거기에다 최근 백악관에서 미국과 남아공 대통령 간의 설전까지 겹쳐 관계 악화 등을 이유로 불참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이에 기재부 관계자는 “베센트 재무장관이 올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황이다"고 말했다.
실제 G20재무회의는 통상 한미일 재무장관 간 양자 또는 3자 회동을 통해 주요 경제 현안을 조율하는 외교무대이지만 미국이 빠지는 상황에서는 한국이 얻을 실익이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지난 2월 회의 때도 베센트 장관의 불참으로 우리나라는 장관이 아닌 차관이 참석하는 선에서 조정됐다.
반면 오는 10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G20재무장관회의에는 대통령 임명을 전제로 구윤철 장관 후보자가 직접 참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재무장관과의 양자 회담을 포함해 글로벌 정책 공조와 한미 간 경제 대화 등 실익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가까운 시일에 IMF·OECD 등 주요 국제기구 인사들과의 회동과 함께 베센트 재무장관과의 회동을 조속히 추진하여 한국의 경제정책 방향을 설명하고 관세협상 등 현안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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