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대 페르시아어·이란학과 학생 4명이 지난달 22일 국제 교류 프로그램으로 방문한 이란에서 급히 귀국했다. 이스라엘과 이란 간 무력 충돌이 발생하자 프로그램을 끝까지 마치지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해당 학과에 재학 중인 23학번 박 모 씨는 “이란이 폭격을 당하는 등 전쟁 당사국이 됐기 때문에 2년 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 당시보다 훨씬 불안했다”고 전했다.
1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중동 지역의 긴장 고조로 국내 중동학과(아랍어과·이란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안전은 물론 유학과 취업 모두 직결된 사안인 만큼 학생들은 휴전 소식에도 쉽게 안심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외교적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전쟁이 언제 재개될지 모른다’는 불안도 감지된다.
당장 이란 유학을 계획했던 학생들은 날벼락을 맞았다. 한국외대에서는 2학기 이란 파견학생 제도 진행을 재검토하고 있다. 대학 관계자는 “휴전이 선언됐지만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향후 외교부의 조치와 현지 상황을 종합해 판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란뿐만 아니라 국내 5개 대학에 있는 아랍어과 학생들 역시 불안함을 드러내고 있다. 전쟁 당사국이 아닌 곳으로의 유학은 현재 문제가 없지만 예고 없는 전쟁 가능성에 학생들은 인접국을 방문하는 것 역시 망설이고 있다. 아예 이란이나 이스라엘과 멀리 떨어진 북아프리카 국가로의 유학을 고려하는 학생도 느는 추세다. 아랍어과 22학번에 재학 중인 김 모 씨는 “이란과 꽤 먼 튀니지로 유학할 예정인데도 불안하다”며 “요르단처럼 이란·이스라엘과 맞닿은 나라는 학우들이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유학을 안 갈 수는 없다. 취직할 때 특수어학과 전공을 내세우려면 유학 경험은 사실상 필수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이종화 명지대 아랍지역학과 교수는 “아랍어는 국가와 지역마다 방언이 있어 현지에서 지식을 습득할 필요가 있다”며 “국내에서 2~3년 공부한 것보다 현지에서 1년 있는 게 학습에 더 낫다”고 설명했다. 국내에는 중동 관련 자료가 부족한 점 역시 유학을 가야 하는 이유다.
유학을 이미 갔다 온 이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중동 정세 불안에 건설이나 제조업 등 관련 취업 시장이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 공기업이나 법인 등에서 진행하는 인턴십 기회도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따라 복수전공 등을 통해 다른 진로를 모색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명지대 아랍지역학과 강 모 씨는 “취업 시장에서 아랍어 전공이 갖는 희소성이 분명 있지만 최근 국제 정세상 전공생들의 선택지가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라며 “이과 복수전공을 준비하는 학우도 있다”고 밝혔다.
성일광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는 “미국의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가 심해지면서 국내 기업들의 이란 진출이 어려워지고 이에 따라 채용도 자연스레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통역 등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축소되면서 페르시아어 전공자의 상황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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