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과 H형강 등 건설 자재로 쓰이는 봉형강 제품은 현대제철(004020)의 핵심 사업군이다. 현대제철의 전체 철강 생산량(2024년 기준)은 1900만 톤으로 포스코(약 3300만 톤)에 밀리지만 봉형강은 적수가 없는 국내 점유율 1위다. 철근은 연간 330만 톤, 형강은 연간 360만 톤을 생산한다. 포스코는 열·냉연 강판 등 판재류에 사업이 집중돼 있고 봉형강은 만들지 않는다.
현대제철이 올여름 봉형강 주요 생산 거점을 차례대로 멈춰 세우는 것은 그만큼 사업이 어렵다는 방증이다. 건설 경기 침체 장기화로 봉형강 시세가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생산량을 줄여서 가격 방어라도 하겠다는 것이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6월 7일부터 포항2공장에 대한 무기한 ‘셧다운’에 들어갔다. H형강을 주로 생산하는 포항2공장은 인천공장과 함께 주요 봉형강 생산 거점 중 하나다. 이어 여름철 보수 작업을 위해 29일부터 7월 15일까지 당진 철근공장이, 7월 21일부터 8월 31일까지 인천 철근공장이 문을 닫는다. 사실상 현대제철의 국내 주요 봉형강 공장이 여름철 휴업 상태에 들어가는 셈이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철근 가격 하락과 하절기 전력비 할증 등이 겹쳐 제품을 판매할수록 손해가 커지는 구조가 계속되고 있다”며 “이번 생산 중단에 따른 감산이 손해가 되지 않는 구조”라고 말했다.
실제 철근 유통 가격은 이날 기준 톤당 72만 원으로 손익분기점인 70만 원 후반대를 한참 밑돌고 있다. 현대제철은 업계 2위인 동국제강(460860)이 셧다운 조치를 예고하자 이에 맞춰 주요 공장의 보수 일정을 잡아 감산 효과 극대화를 노리고 있다. 동국제강은 7월 22일부터 8월 15일까지 인천공장 생산을 중단하기로 했다. 철근 생산 1·2위 업체가 동시에 공급량을 대폭 줄여 가격 인상의 여지를 높인 것이다.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은 철근 유통 물량과 관련해 손익분기점 밑으로는 팔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조하며 유통사들에 톤당 78만 원을 책정하고 통보한 상태다.
특히 현대제철은 가격 방어에 더해 생존을 위한 사업 개편 및 조직 쇄신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현대제철은 올 1분기 19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지난해 4분기에 이어 2개 분기 연속 적자를 냈다. 업황 악화가 장기화할 우려에 지난해 희망퇴직, 임원 급여 20% 삭감 등 조치를 중심으로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자금 마련을 위해 굴삭기 부품인 무한궤도를 주로 생산하는 포항 1공장 중기사업부 매각도 계획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27일 서강현 대표 체제 출범 이후 첫 대규모 조직 개편도 단행하면서 봉형강 사업본부를 폐지했다. 철근과 H형강 등 핵심 사업이 부진한 만큼 제품별로 쪼개져 있던 사업본부를 합쳐 조직 효율성을 높이고 영업을 강화하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에 봉형강 사업본부와 판재 사업본부 등으로 구분됐던 사업 체제를 생산본부 하나로 통합했다. 봉형강 사업본부 내 전담 조직이던 철근 영업실, 철근 판매팀, 형강 판매팀, 형강 유통팀 등은 모두 폐지됐다. 조직을 일원화해 비용을 줄이고 통합 관리 체제를 구축한 셈이다. 생산본부장은 기존 판재사업본부장이던 이보룡 부사장이 맡게 됐다.
현대제철은 사업본부를 합친 대신 영업본부를 신설했다. 각 본부에 흩어진 영업 기능을 하나로 묶어 본부로 격상시킨 것이다. 김원배 봉형강사업본부장은 신설 영업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판매에 초점을 맞춘 영업 부문을 서비스 중심으로 바꿔 나간다는 방침도 정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기존 사업본부는 제품별로 구분됐으나 이제 생산본부 안에서 자동차·건설·조선 등 수요 산업별로 대응할 수 있게 조직을 재배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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