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창업 당시만 해도 마키나락스는 제조업을 위한 특화 인공지능(AI) 솔루션을 개발하던 기업이었다. 반도체 장비, 철강 공정, 폐기물 소각로, 로봇팔 등이 있는 복잡한 제조 현장에서 데이터를 다루고 설비의 이상 징후를 예측, 제어하는 기술에 강점을 보여 다양한 제조 기업 고객사를 확보했다.
제조 특화 도메인을 뿌리로 삼은 이 기업은 이제 국방이라는 영역에 발을 들여 ‘K팰런티어’를 꿈꾸며 폐쇄망과 특수 분야라는 단단한 장벽을 돌파해가고 있다. 팰런티어는 AI 기반 의사결정 플랫폼을 제공해 미국 정보기관의 의사결정 기술을 혁신했다. 이후 전쟁과 감염병 대응, 복잡한 금융 사기 탐지까지 ‘문제를 해결하는 AI 플랫폼’으로 불린다.
“제조업의 공장 설비는 원래 폐쇄망에서 돌아갑니다. 보안도 엄격하고요. 경험해보니 방산도 똑같더라고요. 처음부터 너무 잘 맞았죠.”
윤성호 마키나락스 대표는 25일 서울 강남구 마키나락스 본사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군이 자체적으로 저희 AI 플랫폼 상에서 필요에 따라 수천, 수만개의 에이전트를 만들어내게 하는 게 목표”라며 “올해를 방산 분야 진출의 원년으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에이전트는 운용 중인 무기 체계와 실시간 적 위치 등에 따라 다양한 작전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하고 효율성과 리스크를 분석해 지휘관에게 최적의 대응안을 제시하는 ‘디지털 참모’ 역할을 한다.
마키나락스는 지난해 9월에는 방위사업청 주관한 ‘방산혁신기업 100’에 선정됐다. 선정 기업 중 유일한 AI 플랫폼 기업이다.
윤 대표는 “우리는 모델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문제를 푸는 회사”라고 단언한다. 미국 팰런티어처럼 복잡한 산업 시스템에 내재한 문제를 기술이 아닌 ‘맥락’을 중심으로 풀겠다는 철학이 바탕이 됐다는 게 윤 대표의 설명이다.
국방의 3중 장벽을 뚫어내다
국방에서 AI를 도입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윤 대표는 ‘세 겹의 진입장벽’으로 뚫어야 했다고 표현했다. 첫 번째 장벽은 속도다. 그는 “통계를 보면 국방 영역에서 기술 검토부터 도입까지 평균적으로 14년이 걸린다”며 “AI 기술은 7개월마다 거의 두 배로 발전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기술은 진부해질 수 있다”고 짚었다. 두 번째 장벽은 군 내부의 폐쇄망이었다. 외부 솔루션을 쓰는 것은 태생부터 한계가 있고 클라우드도, 오픈소스도 쓸 수 없는 시스템 상에서 AI모델을 개발하려면 처음부터 설계가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요소는 국방만의 도메인이라는 장벽이다. 데이터가 없으면 아무리 훌륭한 AI 모델이더라도 소용이 없다.
이 장벽들은 오히려 마키나락스에 기회가 됐다. 그는 “마키나락스의 경우 처음부터 제조 기업을 대상으로 AI 솔루션을 개발해 왔다보니 강력한 보안과 폐쇄망 구조에 익숙한 게 장점으로 작용했다”며 “보안 기술과 AI 기술력을 모두 갖춘 기업이라는 점이 장점이 됐다”고 말했다. 마키나락스는 2023년 말 자체 개발한 AI 플랫폼 런웨이(Runway)를 국방과학연구소(ADD)에 납품하기 시작했고 폐쇄망 내에서도 동작 가능한 높은 보안성의 AI플랫폼에서 군 데이터 기반 특화 모델을 빠르게 학습·배포할 수 있는 기능을 선보였다. 런웨이는 수천 개의 에이전트를 동시에 설계하고 관리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군 내부에서도 직접 에이전트를 제작해 쓸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지휘관이 직접 AI 에이전트를 만들게 해 지휘 결심 체계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윤 대표에 따르면 작전체계 어시스턴트에 AI가 필수적인 이유는 통합된 데이터 환경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사 작전은 하나의 시나리오만 있는 게 아닌 만큼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체계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 꼭 군사 작전을 펼칠 때가 아니라 평소에도 군에서 하는 작업들의 업무 효율화를 크게 높일 수 있다. 장비의 이상을 탐지하거나 고장날 수 있는 시점을 예측해 물자를 배치하고 기존에 사람이 수작업으로 판단하거나 분석하던 모든 업무에 AI 에이전트를 투입하면 군의 생산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산업 분야 베테랑과 AI엔지니어가 시너지
본업인 제조 AI 분야 역시 확장 중이다. 올해 4월에는 일본에 지사를 설립하고 로봇·전기설비 기업들과 파일럿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산업계와 국방을 가리지 않고 동시에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데는 ‘문제가 있는 현장으로 간다’는 마키나락스 특유의 문화가 작용했다. ‘고객과 계약이 되면 행선지를 묻지 않고 바로 비행기를 탄다’는 팰런티어처럼 마키나락스도 연구실보다는 현장을 중시한다는 설명이다. 회사내에서 추구하는 AI엔지니어 인재상 역시 모델을 가장 정교하게 다듬는 사람이 아니라 현장의 문제를 가장 밀접하게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다.
조직 구성도 일반적인 AI 스타트업과 다르다. 이날 라운지 한쪽에 모여 함께 회의를 하는 엔지니어들 사이에는 다양한 연령대가 눈에 띄었다. 회사 전체적으로 가장 연장자는 60세(1965년생)로 통신회사에서 오래된 현장 경험 갖추고 이 곳에 입사했다. 제일 막내급인 2000년생과 비교하면 한 세대 이상의 차이가 난다. 군 출신 직원도 3명이다. AI를 꼭 해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들어온 업계 베테랑들이 젊은 엔지니어와 함께 학습하고 실전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경력 10년 이상 시니어 비중이 약 20%를 차지한다.
"30년 현장 경험을 가진 베테랑의 노하우가 이제는 AI에게 전수돼야 하는 시대입니다."
윤 대표가 말하는 AI의 본질은 ‘초지능(Super Intelligence)’보다는 ‘초생산성(Hyper Productivity)’이다. 이전에는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만 듣고도 이상 여부를 파악하는 일종의 ‘슈퍼 휴먼(Super Human)’이 현장에 있었고 그 기술을 후세대에 전수했다. 하지만 최근 제조 현장에는 이 같은 전문 지식을 전수할 후속 세대 자체가 없기 일쑤다. AI 시대에는 명장의 모습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앞으로의 명장은 데이터를 잘 다루는 사람”이라며 “프롬프트만 잘 써서는 안 되고 설비 구조나 도메인을 이해한 채로 AI를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대표는 창업가로서의 삶을 불확실성을 견뎌내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지난해 여러 불확실성으로 코스닥 상장심사를 자진 철회하면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 기간 제품 고도화에 집중했다. 산업계와 국방 부문을 넘나드는 마키나락스의 윤 대표는 한국의 팰런티어가 되겠다는 말을 하기보다 비전을 제시했다. “AI가 실제 산업계에 도입된 비율은 아직 매우 낮습니다. 시장이 폭발할 타이밍은 반드시 오고 그때까지 준비된 기업만 살아남을 수 있어요. ‘가장 복잡한 산업계의 문제를 가장 실용적으로 푸는 회사’ 그게 바로 우리가 되고 싶은 AI 플랫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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