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고속도로 계획은 양적 설비 확장에 집중돼 있습니다. 전력감독원 같은 전문기관을 설립해 송전망 신뢰도(일정한 주파수와 전압을 유지하는 정도)를 객관적으로 평가·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도 필요합니다.”
이병준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24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21회 에너지전략포럼’ 주제 강연에서 “그동안의 에너지정책은 신규 전력망 확충 등 전력계통의 양적 확대에 치중된 한계가 있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교수는 “해외 선진국들을 보면 에너지고속도로와 같은 초대형 송전망을 건설할 때 신뢰성을 확보한 전문적인 기관들이 개입한다”며 “대형 인프라 사업인 만큼 전력계통의 신뢰도를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관계자들의 이행을 감독할 수 있는 기구가 국내에도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전력이 송전망 건설의 주체이면서 운영자이며 사업 경제성까지 판단한다. 건설 주체가 스스로 사업성을 평가하고 리스크를 검토하는 구조다. 또 전력계통을 운영하는 전력거래소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별도의 기구가 없다. 특히 국내 전력계통은 단일 전력회사 체계에서 벗어나 발전·송전·배전·판매 등 기능별 분리가 이뤄져 시장참여자 간 이해충돌 조정과 신뢰도 기준 이행에 대한 평가 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전력감독원 같은 독립적이며 전문적인 규제 기능을 가진 기관이 필요하다는 게 이 교수의 생각이다.
해외의 경우 북미는 북미신뢰도기구(NERC), 유럽연합(EU)은 유럽송전운영자 네트워크(ENTSO-E), 일본은 광역계통운영기관(OCCTO) 같은 별도의 기관을 둬 전력계통 신뢰도를 평가한다.
이 교수는 “인공지능(AI) 시대 전력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데 전력망 확충도 중요하지만 품질 높은 전기를 공급하는 것도 필수 요소”라며 “이를 위해 전력감독원 같은 신뢰도 평가 전담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전력감독원에 신뢰도 기준 개발 및 이행 확인, 계통 감시 및 고장 조사, 신뢰도 평가 등의 역할 부여를 제안했다.
그는 최근 송전망 건설을 둘러싼 지역 주민들의 반발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전력감독원 같은 독립기구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봤다. 이 교수는 “송전망을 건설할 때 주민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망 계획 적절성, 공익성에 대한 객관적 설명이 필요한 데 독립기관이 국민 소통 창구로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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