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이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의약품 허가문서 자동 작성 프로그램 개발에 나서고 있다. 규제기관 제출 문서의 작성 기간을 줄이고 인허가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해 시장 선점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다.
22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최근 생성형 AI를 활용한 규제기관 제출용 허가문서 작성 프로그램 개발에 착수했다. 회사 관계자는 “아직 개발 초기 단계지만 프로그램이 완성되면 허가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SK바이오팜도 AI 솔루션 기업 피닉스랩과 문서 자동화 솔루션 공동 개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피닉스랩은 SK네트웍스의 AI 기술 개발을 담당하던 조직으로 작년 9월 스핀오프(분사)했다. 문헌 조사부터 보고서 작성까지 전 과정 자동화를 지원하는 생성형 AI 솔루션 ‘케이론’을 보유한다.
그동안 제약·바이오업계에서 AI는 후보물질 발굴 등 의약품 개발 단계에 주로 활용돼왔다. 초기 딥러닝 기반 AI가 분자구조를 이미지화해 구조를 예측하는 데 강점을 보였기 때문이다. 일례로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세포주 품질을 높이고 의약품 제조에 필요한 배양조건을 시뮬레이션해왔다. SK바이오팜은 자체 AI 플랫폼 ‘허블’로 질병 유발 유전자 및 단백질 분석, 후보물질 발굴 등의 작업을 진행했다.
신약과 바이오시밀러 모두 ‘최초 출시’ 효과가 크다. 그런데 의약품 허가를 받기 위해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 임상연구보고서(CSR)의 경우 시험 설계·수행·분석·결론 등을 수천에서 수만 페이지로 담아야 해 제작에만 4개월여 기간이 소요됐다. 챗GPT와 같은 거대언어모델(LLM)의 등장으로 언어 기반 전문문서 작성의 정확도와 속도가 향상되자 규제문서 작성 자동화에 AI 도입 시도가 이어지는 이유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규제기관에 제출한 문서에 오류가 있으면 허가 지연은 물론 취소로 이어질 수 있어 그동안 수작업이 중심을 이뤘다”며 “해당 업무가 자동화되면 출시까지 수 개월을 단축해 시장 진출이 더욱 빨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빅파마들은 이미 문서 작성 업무에 AI를 도입해 인허가 기간 단축의 성과를 내고 있다. 사노피는 2022년 해당 분야 선두주자인 이솝과 파트너십 확대를 발표했고 노바티스와 일라이릴리도 이솝에 전략적 투자를 진행한 상태다. 이솝은 자사 생성형 AI를 임상보고서 작성에 활용할 경우 작성 기간이 평균 40% 단축된다고 밝혔다. 2023년에만 1만 개 이상의 보고서를 생성했고 보고서 작성·검토 시간을 수만 시간 단축했다고도 발표했다. 머크는 자체 개발한 ‘GPTeal’에 문서 초안 작성을 맡기고 있다.
규제당국 역시 변화의 흐름에 맞춰 AI를 적극 도입하기 시작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달부터 오픈AI 기반 생성형 AI 도구 ‘엘사’를 도입해 문서 검토 시간 단축에 활용하고 있다. 엘사는 2023년 FDA는 산하 의약품평가연구센터에서 진행된 진행된 파일럿 프로젝트에서 수일이 걸리던 검토 시간을 몇 분 안에 수행하는 등 높은 효율성을 인정받았다. FDA는 이달 말까지 모든 부서에 AI를 도입해 행정 부담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바이오업계 관계는 “후보물질 발굴에 국한하지않고 AI를 신약 개발 프로세스 전반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도입하느냐가 새로운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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