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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칩 패권경쟁' 한시가 급한데…"선례 없다"며 낡은 농지법 고수 [시그널]

[잘못된 법, 산업 어떻게 망쳤나] <4>반도체 산업

숙소도 못지어 반도체 클러스터 지연 우려

'농지 임시전용' 대안 제시하지만

비용 급증·적시 숙소공급 어려움

"부담금 한시 감면·원상복구 유예 등

특별법 개정해 예외 조항 마련을"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전경.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숙소난은 낡은 규제가 미래산업을 가로막는 대표 사례라는 평가다. 미국·대만 등 글로벌 주요 국가는 반도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전방위로 정책적 지원을 쏟아내는 반면 우리는 중앙정부의 전폭적 지원 약속이 무색하게 공장 건설 현장 인력을 위한 숙소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처지다. 자칫 공기가 지연돼 적시에 반도체 생산이 이뤄지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의 손발을 묶는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숙소 부족 문제는 용인시가 농지법이라는 낡은 규제를 들이밀면서 시작됐다. 용인시는 4월 9일 ‘일시 사용 건설 현장 임시숙소 설치 기준’을 마련했고 근로자 안전을 위해 연면적 1000㎡, 2층 이하, 건물 간 이격 2m, 소방차 진입로 4m 확보 등 세밀한 기준을 정했다. 또 투기성 개발을 막기 위해 실제 공사 수행자에 한해서만 설치를 허용했다.

하지만 ‘산업단지 준공 1~2개월 전 원상 복구’라는 단 하나의 조항에 모든 게 무력화됐다. 첨단반도체 공장 인근 땅이지만 법적으로는 여전히 농지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클러스터 완공 시점을 2040년으로 추정하는데 올해 숙소를 지어도 15년 뒤에는 철거하고 다시 농지로 만들어야 한다. 부동산 투자 업계 관계자는 “농지 소유주와 협상을 끝내고 투자자도 확보했지만 원상 복구 조항 때문에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며 “15년 뒤 철거해야 한다면 자금 회수가 불가능해 투자 유치는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삼성전자(005930) 평택캠퍼스는 인근 고덕국제신도시가, 여수국가산단은 주변 주택지구가 숙소 역할을 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처럼 주변이 완전히 허허벌판인 전례가 없어 기존 농지 관련 법규를 그대로 적용할 수밖에 없다는 게 용인시의 입장이다. 용인시는 원상 복구 조항을 피하고 싶다면 정식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원론적 설명만 반복하고 있다. 정식으로 농지전용을 하려면 공시지가의 20~30%에 달하는 농지보전부담금을 내야 한다. 초기 자금 부담이 급증하고 복잡한 행정절차까지 밟아야 해 적시에 숙소를 짓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부동산 투자 업계의 시각이다.





문제는 이것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2026년부터 바로 인근 이동·남사읍 일대에 삼성전자가 360조 원을 투자하는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된다. 삼성전자는 이곳에 팹 6기를 지을 계획이다. SK하이닉스(000660) 클러스터의 2배 이상 규모다. 두 프로젝트가 동시에 진행되면 건설 인력이 용인으로 대거 몰려든다. 지금의 숙소난을 해결하지 못하면 인력 쟁탈전과 공사비 급등으로 두 프로젝트 모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이런 행정 편의주의는 주요국의 반도체 지원 정책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대만 정부는 TSMC 공장 인허가를 1년 안에 모두 해결해준다. 일본은 구마모토 TSMC 공장에 5조 원에 가까운 보조금을 지급했다. 미국은 ‘반도체지원법(칩스법)’으로 수십조 원의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이들 국가는 반도체 공장 하나를 국가 안보 자산으로 인식하고 모든 규제를 풀어줬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향후 대규모 인구가 유입돼 사실상 신도시가 될 땅을 다시 원상 복구시켜 농지로 활용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이냐는 의문이 나온다. 미래의 폭발적인 주거·인프라 수요를 외면한 채, 경직된 법 조항에 갇혀 토지의 효율적 이용을 막는 것은 탁상행정의 전형이라는 비판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반도체는 속도 전쟁”이라며 “국가첨단전략산업특별법을 개정해 전략산업단지 내 필수 지원 시설에 대해서는 농지보전부담금을 한시적으로 감면하거나, 원상 복구 의무를 장기 유예 또는 면제하는 특례 신설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정부 차원의 조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앞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용수 확보 문제로 한차례 홍역을 겪기도 했다. 2019년 SK하이닉스가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밝혔지만 공업용수 공급의 키를 쥔 여주시가 인허가를 반대하며 3년가량 갈등을 겪었다. 그러다 2022년 11월 정부가 지역 상생 지원을 약속하며 중재에 나서면서 마침내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윤상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국가첨단전략산업특별법이나 산업입지법에 규제를 완화할 근거가 있다”며 “산업단지 내 또는 인근 지역에 지원 단지를 조성하는 방안 등 행정 재량을 발휘해 인허가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고 신속하게 숙소를 지을 수 있도록 실질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완공 조감도. 사진 제공=용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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