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중간관리자 네명 중 한 명은 여성…임원 비율은 ‘절반’ 뚝
스타트업 중간관리자 네명 중 한 명은 여성이다. 이 같은 수치에 안심한 순간 여성들의 존재감은 임원 레벨에서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다. 지난 달 기준 전체 스타트업 임원 중 여성 임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13.7%에 그쳤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지난 11일 발간한 ‘스타트업 성평등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모빌리티, 하드웨어·제조 등 테크 기업의 여성 임원 비중은 한자릿수대에 그쳤다. 여성 임원 비중이 가장 낮은 분야는 모빌리티로 1.8%에 불과했고 이어 하드웨어·제조 분야가 3.7%, 딥테크 분야가 6.1%를 기록했다. 반대로 여성 임원이 가장 많은 분야는 여행·레저 분야로 25%를 기록했고 이어 헬스케어·바이오(19%), 교육(18.5%) 순으로 나타났다.
중간관리자-임원 격차 큰 직종…모빌리티 1위, 광고·마케팅 2위
눈에 띄는 부분은 여성 중간관리자와 여성 임원 간 비율의 차이가 극명한 분야 역시 제조·딥테크 영역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모빌리티 분야의 경우 여성 중간 관리자 비중은 15.4%로 조사됐지만 여성 임원은 1.8%에 그쳐 8.5배 이상의 격차를 보였다. 상대적으로 여성 직원이 많은 광고·마케팅 영역도 유리천장은 높았다. 중간 관리자의 비중은 3명 중 1명에 해당하는 34.2%였지만 임원 비중은 10.3%로 격차가 3.3배에 달해 2위를 기록했다. 하드웨어·제조 분야 역시 중간관리자는 12%를 차지했지만 여성 임원 비율과의 격차는 3.2배로 뒤를 이었다.
연구를 진행한 이지영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연구위원은 “연차별 연봉 수준을 비교하면 이 같은 경향성이 뚜렷하게 나타난다”며 “16년차 이상을 제외하고는 연차가 높아질수록 성별 격차가 확대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1~3년차 때는 남성의 평균 연봉은 4100만원, 여성의 평균 연봉은 3600만원으로 13%의 차이를 보였지만 중간 관리자가 대거 포진한 연차인 11~15년차에는 남성의 경우 7700만원, 여성의 경우 6200만원으로 24% 이상의 임금 격차가 나타났다. 이 같은 격차는 임원급이 된 연차인 16년차 이상부터 다시 1~3년차 때와 동일한 수준으로 회복됐다. 16년차 이상의 경우 남성의 평균 연봉은 1억400만원, 여성의 경우 9200만원으로 조사됐다.
재무 영역 남녀 연봉격차 100%…백오피스에서도 심각
이번 연구는 전통적으로 여성 직원들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백오피스에서도 임금 격차가 뚜렷하다는 점을 보여줘 충격을 줬다. 직무에 따른 남성과 여성의 연봉 격차는 금융·재무 영역에서 가장 차이가 컸다. 남성의 경우 평균 연봉이 8000만원이었지만 여성의 경우 4000만원에 불과해 두 배의 차이를 보였다. 이는 이 분야에서 여성들의 승진 유리천장이 뚜렷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획·경영 역시 남성의 경우 6800만원, 여성은 4500만원으로 51%의 격차가 났다.
영업, 재무, 개발, 대관 등 유리천장 깬 여성들
이날 서울 강남구 스타트업 얼라이언스에서 진행된 제1회 ‘우먼 인 스타트업’ 컨퍼런스에는 중간관리자로 살아가는 여성들이 일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현장에는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여성 65명이 참가했고 200명 가까운 인원이 온라인 생중계로 행사를 지켜봤다.
채널톡 운영사 채널코퍼레이션의 양효진 세일즈 리드는 여성은 영업에 적합하지 않다는 편견을 과감히 깼다. 양 리드는 “채널코퍼레이션의 경우 세일즈 리더 전체가 여성”이라며"세일즈 퀄리티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맥도날드 세일즈’ 기법이 지향점인데 이를 위해 다양한 데이터를 체게적으로 정리했다”고 말했다.
중고거래 기반 커뮤니티 플랫폼 당근에서 개발자로 일하는 박미정 공통서비스개발팀 리더는 리더로 8년을 일하며 겪은 실패 사례를 공유했다. 그는 “초창기에는 제 손으로 완결한 결과만 제 것이라는 생각이 있어서 혼자 해결을 하려 하고 과감한 위임을 못했다”며 “이후 팀원의 성과도 내 성과라는 생각을 하면서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직방에서 대관 업무를 맡고 있는 고아라 사회적가치전략실장은 “대관의 경우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는데 성과를 인정 받기 위해서 단기적으로 목표를 쪼개고 대표와 비전이나 정보 등을 체계적으로 동기화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올 들어 토스뱅크에 합류한 서혜란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은행권에서 일하는 동안 운용한 자금의 성과가 훨씬 좋았다”며 “실력으로 압도적인 차이를 내다 보니 인정이 따라왔다”고 설명했다.
육아와 일 사이에 루틴의 힘
육아를 하는 참가자들의 관련 질문도 잇따랐다. 박 리더는 “아이를 키우다 보니 스스로의 시간이 거의 없는데 아침에 4시에 일어나 몇 가지 루틴을 빠짐 없이 한다”며 “하루를 내가 통제한다는 감각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서 CFO는 워킹맘으로서도 육아 정보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과감히 반 대표를 자처했다. 그는 “엄마들 모임을 주도하다 보니 정보에서 소외되는 일이 없었다”며 “직장 다닌다는 이야기는 최대한 미루는 것도 추천한다”고 귀띔했다.
이날 처음 열린 컨퍼런스는 박희은 알토스벤처스 파트너가 개인적으로 후원해 마련됐다. 박 파트너는 “시니어급 여성 의사결정자들이 더 많아져야 스타트업을 시작하려는 여성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며 업계의 씨앗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알토스벤처스는 남녀의 성별 구성이 절반씩 이뤄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 행사가 한 회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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