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10명 중 8명이 공공병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지만 정작 이용률은 크게 떨어진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단골 병원이 있거나 접근성이 낮다는 점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 들었지만, 전문가들은 전반적 진료역량이 지역 종합병원보다 떨어지는 점이 이용률을 떨어뜨리는 근본적인 이유라고 지적하고 있다. 결국 이재명 정부가 보건의료 부문 공약으로 내세운 지역 공공병원 확대를 성공적으로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투자 확대를 통해 공공병원의 장비·인력 등 진료 인프라 수준을 높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바이오헬스정책연구센터는 12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공공병원 기여도 인식과 이용 상충 원인분석’ 보고서를 공개했다. 진흥원은 2023년 5월 2200명 대상, 2024년 7월 500명 대상으로 두 차례 조사를 통해 공공병원에 대한 국민 인식과 의료 이용 실태를 분석했다. ‘공공병원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2023년에는 전체의 83.7%, 지난해는 76.2%로 여전히 80%에 육박했다.
하지만 평소 공공병원 이용률은 높지 않다. 최근 3년 내 공공병원 이용률은 2023년 37%에서 지난해 40.2%로 소폭 상승했다. 그 이유로는 ‘단골병원이 있다(중증질환 81.3%·일반질환 68.1%)’, ‘접근성이 낮다(중증질환 50%·일반질환 52.8%)’ 등이 주로 꼽혔다. 향후 이용 의향은 2024년 3.8점으로 주로 ‘감염병 재유행’ 때 이용 의사가 더 많았다. 한 응답자는 심층 질문에서 “의료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 공공병원 외면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비급여 진료를 줄이는 수준만으로는 공공병원을 찾을 이유가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병원장 권한 제한과 행정부서의 영향력 우위 등으로 인해 조직문화 개선 및 리더십 발휘가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도 있었다.
연구진은 “공공병원이 의료의 질, 서비스 경쟁력, 정책적 역할, 의료시장 내 위상 등에서 한계에 직면해 있다”며 "2023년 기준 전국 35개 지방의료원 중 포괄2차병원으로서 역량이 있다 판단할 수 있는 곳은 4곳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환자 치료를 전담하는 과정에서 중증환자 진료역량이 현격히 낮아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현재 공공병원들이 이런 상황을 반전시킬 여력이 없는 상태다. 국립중앙의료원은 2020년부터 영업적자를 이어가며 지난해 671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고, 서울의료원 역시 지난해 영업손실이 전년대비 232억 원 늘어난 795억 원에 달했다. 지방의료원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전국 35개 지방의료원은 2023년 총 3073억 원, 지난해 상반기 1112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연구진과 전문가들은 공공병원의 △인력·품질 중심의 통합 구조개편 △인프라 투자체계 정비 △디지털 전환 △지역 맞춤형 공급체계 설계 △지속가능한 운영지원체계 구축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정부가 공공병원을 확대한다 해도 이 같은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지속 가능한 운영체제를 정립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옥민수 울산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지역완결적 의료체계를 갖추기 위해 공공병원들이 24시간 진료체계를 갖추고 특정 과목 진료가 불가능해 다른 병원으로 전원하는 사례를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평소 내원 환자가 적어도 표준진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표준화된 진료 프로토콜을 갖추고 의료진들의 훈련이 철저하게 이뤄져야 장기적으로 공공병원들의 역량이 강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현석 서울의료원장은 “과거에 비해 지방자치단체나 중앙 정부의 재원 투자가 늘어나면서 최신 장비가 들어오고 의료서비스의 수준이 상당히 향상됐는데도 상대적으로 공공병원은 민간병원보다 못하다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며 “사회적으로 공공병원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고 병원들도 이를 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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