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을 둘러봐도 지평선까지 모래밖에 보이지 않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막 한 가운데 팀 코리아가 만든 자푸라1 열병합발전소가 서 있다. 이제 막 철골 구조물을 올리고 있는 인근 가스 플랜트 설비와 달리 공정률 97.58%에 달하는 자푸라1 발전소는 이미 주요 장비 설치를 마치고 시운전 준비와 마감 공사가 한참이었다.
공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한국전력공사 관계자는 “해외에서 한전이 열병합발전소를 수주한 것은 자푸라1 발전소가 처음”이라며 “목표한 대로 10월 중 준공되면 향후 20년간 전기를 판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통상 전력구매계약이 10년 단위로 한두차례 더 연장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푸라1 발전소는 적어도 2055년까지 한전에 안정적인 전력 판매 수익을 가져다줄 예정이다.
◇50도 폭염 속 ‘온 타임’ 건설…중견기업 장비도
자푸라1 발전소는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동쪽으로 300km 떨어진 알 아흐사(Al ahsa) 지방 사막에 자리 잡고 있다. 사우디 최대 항구 도시 담맘에서 차로 2시간 가까이 달려 도착한 공사 현장은 아직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았음에도 기온이 46도에 달했다. 바람마저 거세게 부는 탓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뜨거운 열풍이 얼굴을 때리고 모래 알갱이가 입에서 씹히는 환경이었다.
이처럼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한전을 필두로 하는 팀 코리아는 2022년 9월 공사에 착수한 지 약 2년 8개월만에 자푸라1 발전소를 준공 직전 단계까지 만들어냈다. 한전 관계자는 “17.2m 길이의 가스터빈이 설치된 터빈실 뒤로 높이 52m 주 보일러가 자리하고 있다”며 “그 옆으로 보조 보일러 2대가 60m 높이의 굴뚝과 함께 나열된 구조”라고 소개했다. 발전소 뒤로는 가스전 곳곳으로 전력을 보내기 위한 380kV 송전탑이 사막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현장에는 ‘무재해 800만 시간’이라는 표어가 붙어있었는데 최근에는 무재해 900만 시간 공사 달성에 성공했다고 한다.
발전소 설비 뒤쪽으로는 축구장 절반 면적의 공랭식 설비를 찾아볼 수 있었다. 모든 발전소는 터빈의 열을 식히는 설비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는 강이나 바다의 물을 활용하지만 내륙 사막에서는 공기를 냉각재로 활용한다. 모래바람 속에서 공랭식 설비를 가동하는 것은 고난도의 기술을 요하는데 자푸라1 발전소에서는 한국의 중견기업 다산DTS가 처음으로 중동에 설비를 납품하는 데 성공했다. 가로 42m, 세로65m, 높이30m 직육면체인 다산DTS의 공랭식 응축기는 지상 3층 높이로 떠 있는 형태로 설치됐다. 설비 아랫면에 직경 4m의 흡입 팬 15개를 설치해 응달쪽 공기를 활용하기 위한 설계다.
◇ 사우디 최대 가스전 전용설비…전력 독점 공급
자푸라1 발전소가 건설된 알 아흐사 지방의 사막은 액화천연가스(LNG)가 46.5억t 매장된 중동 지역 최대 셰일가스전이다. 지난해 LNG 수입량(약 4720만t)을 고려하면 우리나라가 약 99년간 쓸 수 있는 양이다. 그동안 페르시아만에서 생산되는 석유와 천연가스에 의존하던 사우디는 이 지역의 셰일가스의 상업 가치가 풍부하다고 판단하고 총 사업비 1000억 달러(약 1400조 원)를 들여 대대적인 개발에 나섰다.
자푸라1 발전소는 이 지역에 들어설 가스 채굴 설비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일반 산업시설이나 주거·상업용으로 광범위하게 전기를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산업단지 전용(Captive)으로 건설된 설비라는 의미다. 한전에 따르면 자푸라1 발전소는 317MW의 전력과 함께 시간당 315t의 증기와 180t의 계통수를 가스전에 공급하게 된다. 한전 관계자는 “가스 플랜트는 24시간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받아야 하므로 통상 일반 전력망과 분리된 전용 발전소를 구비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형태의 발전소는 중단 없이 설비를 가동하고 생산 전력을 모두 판매하므로 사업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한전은 자푸라1 발전소 이후에 추가 프로젝트까지 수주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가스 채굴 설비 확대에 맞춰 전용 발전소를 추가로 지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월드컵·엑스포 앞두고 공사 한창…사막 발전소는 ‘민원 無’
리야드에서 동쪽 80km 떨어진 곳에서는 또 다른 팀 코리아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수주한 루마-나이리야 가스복합발전 사업 현장이다. 황량한 사막 속 건설 사무소밖에 없는 가운데 터파기 공사를 위해 포크레인과 덤프트럭 등 중장비 120여 대가 먼지를 날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사우디 정부는 2030 리야드 세계박람회(엑스포)와 2034년 사우디 월드컵 행사를 염두에 두고 리야드 시내를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경제 발전과 함께 리야드 인구도 빠르게 늘고 있어 비교적 리야드와 가까운 곳에 발전소를 새로 짓는 것이다. 사우디 발전소 대부분이 동서 해안선을 따라 위치하는데 그리드를 분산하는 효과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 관계자는 “루마 발전소는 설비용량 1890MW 규모”라며 “건설한 뒤 소유하고 운영하는 BOO(Build-Own-Operate) 방식이어서 준공 후 25년간 사우디 측에 전력을 판매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입찰 공고가 지난해 1월 나왔는데 이후 11개월 만에 계약자가 선정 절차가 마무리됐다”며 “사우디 전력 수요가 크게 늘고 있어 각종 태양광·풍력·가스복합발전 프로젝트들이 한꺼번에 진행되고 있다”고 부연했다. 루마 프로젝트 부지 역시 자푸라와 마찬가지로 추가 수주를 기대해 볼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현장 관계자는 사우디 발전 사업의 경우 한국과 달리 민원에 시달릴 일이 전혀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 귀띔했다. 대도시에서 수 킬로미터만 떨어져도 사람이 살지 않는 사막이다 보니 송전선·변전소 설치를 문제 삼을 주민이 없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땅이 부족해 제한된 부지 내에 오밀조밀 설비를 배치하는 한국과 달리 자푸라·루마 사업 모두 ㎢ 단위로 부지를 확보해 두고 공사를 진행 중이었다. 전력 수요에 맞춰 언제든지 설비를 추가할 수 있도록 공간을 넓게 쓰는 것이다. 주민 반대에 부딪혀 전력망 구축이 수 년 씩 늦어고 부지 매입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한국으로서는 부러운 여건이다.
다만 무더운 날씨는 중동 사업에서 난제가 된다. 사우디만 해도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는 모든 근로자들이 점심식사와 함께 휴식을 취한다.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간에 근로를 피하는 것이다. 혹서기인 6월부터 9월 사이에는 휴식 시간이 오후 3시까지로 늘어난다. 작업 시간에도 야외 근로자는 열사병을 피하기 위해 일정 시간 작업 후 수십 분씩 그늘에서 열기를 피하고 있다.
자재 수송 문제도 중동 지역에서 인프라 사업의 어려움을 가중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가스 터빈이나 변압기 등 주요 설비 대부분은 한국이나 일본, 유럽 등지에서 공수해야 하는데 중동까지 도착하는데 수개월의 뱃길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한전 관계자는 “공사를 진행하는데 페르시아만에 지정학적 위기가 터져 홍해 방향으로 자재를 우회해 공수해야 했다”며 “트럭에 적재하기도 쉽지 않은 설비들을 1200km 가까이 육로로 운반하느라 진땀을 흘린 기억이 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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